지혜의 왕으로 알려진 솔로몬 왕을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고, 두 여인이 한 아기를 놓고 다툴 때, 지혜로운 명재판을 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솔로몬의 지혜는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스바의 여왕까지 찾아와서 그의 지혜에 경탄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왕상 10장)
그러나 열왕기는 솔로몬이 왕으로서 지혜롭지 못했던 면도 낱낱이 기록해 놓았다. 먼저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행정 구역을 개편한 일련의 조치는 대단히 지혜롭지 못한 일이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 12지파들은 자기들에게 분배된 땅에서 땅의 경계와 지파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런데 솔로몬은 유다 지파만을 제외하고 나머지 지파들의 땅을 12개의 새로운 행정 구역으로 나누었다.(당시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 안에 통합되어 있었다. 12지파가 땅을 분배받을 때,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 지역 안에 있는 땅을 분배받았다.(수 19:1) 시간이 지나면서 시므온 지파는 강한 지파인 유다 지파에게 흡수, 통합되고, 지파로서 독자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따라서 ‘유다 지파’라고 하면, 그 안에 시므온 지파가 통합되어 있었다.
솔로몬이 유다 지파를 제외한 10지파의 땅을 12개의 행정 구역으로 구분함으로 그때까지 지켜 내려온 지파의 지리적 경계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심각한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솔로몬은 새로 만들어진 12개 행정 구역들이 1년에 한 달씩 각각 돌아가면서 왕실에서 소비하는 양식을 공급하도록 했다. (왕상 4:7) 그런데 그 양이 엄청난 분량이었다. 하루에 밀가루가 90고르, 소가 30마리, 양이 100마리 등이다.(왕상 4:22-23) (1고르는 약 220리터이다. 솔로몬 왕실은 하루에 19800리터나 되는 엄청난 분량의 밀가루를 소비한 것이다.) 이런 엄청난 양을 한 달씩 왕실에 공급한다는 것은 백성들에게는 감내하기 어려운 부담이요 고통이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은 자기가 속한 유다 지파만은 이러한 부담에서 면제해 준 것이다. 솔로몬의 이러한 편파적인 유다 지파 우대 정책은 나머지 10지파의 불만과 원성을 사기에 충분했다.
솔로몬은 건축 왕이었다. 7년에 걸쳐 성전만 건축한 것이 아니라, 13년에 걸쳐 왕궁도 건축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크기는 약 90평 정도였다. 이에 비해 대궐은 300평이 넘었고, 왕이 기거하는 궁전, 중궁전 등 당시 어느 나라에 못지않은 화려함과 사치의 극치를 이룬 왕궁을 건설했다. 이를 위해 솔로몬은 백성들을 강제 동원했다. 레바논의 좋은 목재 백향목 벌목을 위해 3만 명을 동원했고, 짐꾼이 7만 명, 돌산에서 돌을 캐는 석공이 8만 명 등 많은 사람을 동원시켰다. 그 외에도 여러 곳에 병거성과 마병성을 건설하는 것도 백성들에게 부담을 가중시켰다.
솔로몬 왕의 유다 지파를 우대하는 편파적인 처사와 감내하기 힘든 과도한 부담으로 북이스라엘 지파들의 불만은 점증되어 갔고, 급기야 반(反)솔로몬 정변으로 촉발되기 일보직전까지 이르게 되었다. 반정의 앞장을 선 인물은 에브라임 지파 출신의 여러보암이었다. 그의 뒤에는 선지자 아히야가 있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상황을 애굽의 왕 ‘시삭’이 독수리 같이 날카로운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