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부활주일을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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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 우리는 부활절을 지냈습니다. 이번 부활주일은 코로나 여파가 가라앉지 않아 온 성도가 함께 모이기 힘든 상황이어서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전능자의 보호하심의 그늘 아래 은혜로운 시간이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미국의 동부 그리고 동남부 지역에서 4월 중순경부터 흔히 볼 수 있는 “도그우드(Dogwood, 한국명: 말채나무)”라는 나무는 봄의 전령사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수난의 의미를 가장 잘 담고 있는 나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은 당신이 친히 달리실 나무가 필요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참 곧게 잘 자랐구나! 네게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말이다. 혹시 내가 지고 갈 십자가가 되어줄 수 있겠니?” 그때 이 나무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저는 이미 다른 계획이 있어서 곤란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른 나무들에게로 발길을 돌려 같은 부탁을 해보았지만 그들 역시 이런저런 이유를 앞세워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가장 볼품없고 키도 별로 크지 않은 한 나무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혹시 내가 지고 갈 십자가가 되어줄 수 있겠니?” 그때 이 나무는 “네, 그렇게 하지요.” 하고 선뜻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무 기뻐서 그 나무를 축복하시면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참으로 고맙구나! 내가 너의 사랑과 헌신을 사람들이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이제부터 너의 꽃잎 모양을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주마.” 그때 이후로 그 나무의 꽃잎의 모양이 십자가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고 꽃잎의 가장자리에는 마치 예수님의 핏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붉은 점이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코 튀어나지 않는 담백한 색깔로 온 동네와 산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꽃, 게다가 꽃잎마다 하늘을 향해 있어서 마치 하나님을 경배하는 듯한 자태를 보고 있노라면 사순절의 진정한 의미와 정신에 대한 위대한 한 편의 설교를 듣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삽시간에 지구적 재앙으로 번지면서 사순절의 깊은 의미마저도 바이러스 밑에 깔린 느낌조차 들게 됩니다.

그러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듯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제아무리 기승을 부린다 해도 다가오는 부활의 아침을 막을 수는 결코 없습니다. 이 재앙은 결국 지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양의 보혈 아래 있는 성도의 집은 재앙 속에서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주의 보혈의 크신 능력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시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출애굽기 12장 23절의 말씀입니다.

금년에 접어들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국한문혼용성경(國漢文混用聖經)》을 필사하기 시작하여 모세 오경이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독할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사건들을 성경을 필사하면서 생생하게 만나게 됩니다. 당시 여호와의 법이 너무도 엄정했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특히 모세의 형이자 오른팔이었던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장의 직임을 수행하는 일과 관련하여 시나이 광야에서 “거룩한 불”이 아닌, “속된 불”을 주님 앞에 바치다가 주님 앞에서 죽는 참으로 애석한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가 지금 현재, 너그러운 주님의 품안에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외치신 말씀 중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으셨던 그토록 절박했던 절체절명의 순간을 머리에 그려보며 다시 한 번 부활절의 기쁨과 감사를 마음속에 새겨보게 됩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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