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비사] 한국교회학의 기둥 1. 환태평양시대 한국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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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온 시기

우리는 지금 「한국교회학」을 다루고 있다. 한국교회학은 한국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학문이다. 한국교회학의 출발은 자연 한국교회 초기 선교역사부터 시작한다. 복음이 한국을 어떻게 변화시켜 놓았는가를 예수교회가 처음 전해지던 초기 선교 역사와 그 이후의 역사 여정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회가 한국에 처음 선교된 때는 1884년 의료선교사 알렌의 입국에서부터였다. 한국교회가 1984년에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게 된 까닭이 여기 있다. 물론 그 이전에 한국을 다녀간 개신교 선교사들이 없지 않았다. 언더우드는 1908년 펴낸 그의 선교 보고서 「와서 우릴 도우라」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에서 이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 즉 1832년 칼 귀츨라프가 충청도 연안을 다녀갔고 1866년 두 번째 한국을 찾아온 토마스는 와서 평양 대동강변에서 순교했다. 존 로스와 존 맥킨타이어 스코틀랜드성서공회 선교사들은 만주에서 한국인 몇 명을 전도한다. 이들에게 전도를 받은 서상륜은 최초의 한글 성경을 번역한다. 1882년 「누가복음」이 그것이다.

그런데 언더우드는 개신교 선교 착수를 특별히 1882년 한국과 미국 사이에 맺은 한미수호통상조약을 기준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이것은[한미수호조약은-필주] 확실히 서양 교회가 여기 들어와서 기독교의 신앙을 전파하라는 신호였습니다. … 이태가 지나서 미국의 장로교와 감리교가 사실상 똑 같은 날짜에 한국에 도착한 것입니다.”

2. 환태평양시대 기독교의 두 중심국가 – 미국과 한국

한국의 개신교회 선교는 이렇듯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착수되었다. 최초의 의료선교사 알렌과 최초의 목사선교사 언더우드는 미국 북장로교 소속이고 같은 날 제물포에 도착했으나 잠시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들어온 아펜젤라 부부선교사는 미국 북감리교 소속이었다. 언더우드가 한미수호통상조약을 기독교 선교의 신호탄으로 본 것은 의미 깊은 일이다. 왜냐하면 현대교회는 바로 환태평양시대를 지나고 있는데, 환태평양시대라고 불리는 이유가 세계 선교 제1위 국가 미국과 선교 제2위 국가 한국 사이의 바다가 태평양이기 때문이다. 선교 사명의 두 촛대가 미국과 한국 위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사와 일반 역사는 하나로 같이 간다. 그래서 지금 세계는 환태평양시대로 불리고 있다.

환태평양시대 선교 제1위, 제2위 국가가 한국에 복음을 전해준 미국과 복음을 전해 받은 한국이라고 하는 사실은 참 감격스럽기 그지없다. 이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초대 미국인 목사선교사 언더우드가 근대한국을 복음 위에 세워갔다면, 이 복음을 들은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자유대한민국을 성경의 복음 위에 세워갔다. 미국은 우리의 혈맹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의 4대 기둥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교입국론-에서 언더우드를 비롯한 미국 선교사들과 미국이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류금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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