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미나리」에서 할머니 역을 훌륭히 해내 일약 세계적인 배우로 떠오른 윤여정 씨가 미국 TV드라마 「Pachinko」에 출연하게 되어 캐나다에서 촬영을 마쳤다는 보도를 보고 어떤 얘기인지 궁금해 그 원작 소설을 교보문고에서 사서 봤다. 재미동포 여류소설가 이민진 씨가 4년 전에 내놓은 500페이지 대작으로 시간이 좀 지나서야 미국 평단의 주목을 끌고 최우수도서상 후보에 올랐는데 읽어보니 과연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초월하는 호소력이 대단한 작품이라 생각되었다. 후반에 주인공 여인의 첫 아들 노아가 굴곡의 삶을 스스로 끝내는 대목에서는 눈물까지도 고였다.
대하소설 앞부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 백이삭이라는 이름의 목사이다. 평양에서 안수를 받고 형 요셉이 먼저 건너간 일본 땅 오사카로 조선인 사역을 하러 가는 길에 묵게 된 부산 영도의 여인숙에서 그는 한 남자에게 몸을 버린 주인의 딸 순자를 아내로 맞이한다. 오사카와 부산을 왕래하며 장사를 하는 그 사람에게서 16살 순자가 임신한 사실을 그의 어미로부터 듣고 20대의 목사는 구약의 호세아 선지자를 생각하며 이 생명들을 구원하겠다는 일념으로 부산의 한 교회에서 부부의 예를 올리고 함께 일본으로 간다. 1920년대에서 1989년에 이르는 4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에서 윤여정은 나이든 후의 순자 역할을 맡는다고 한다.
순자의 첫 남자 고한수와 다른 조선인 등장인물들은 사행업인 파친코로 일본 사회에서 돈을 벌고 생존을 이어 간다. 이삭 목사의 아들로 순자에게서 태어난 노아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와세다대학에 들어가고 일본인인 척 살아가지만 자기의 친부가 폭력조직 야쿠자의 간부임을 알게 되자 자살한다. 순자는 성경의 고멜과는 달리 선하고 강한 의지로 오사카의 조선인 마을에서 동서와 함께 먹거리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일본 여인과 가정을 가진 고한수는 대동아전쟁 중의 혼난 속에서 순자네를 뒤에서 돕는다. 소설이기에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들이 포함되지만 일제 강점기 민족의 고난과 해방 후 분단된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재일동포 사회의 모순된 존재감, 그리고 이들에 대한 차별의식과 경계심이 섞인 일본인들의 복잡한 정서를 작가는 세계의 독자들에게 냉철하게 풀어준다.
어려서 미국으로 와 예일대를 나오고 2년간 변호사로 일하다가 작가의 길을 택한 이민진은 스스로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위치에서 작품의 소재를 취하고 「파친코」라는 장편소설의 바탕에 기독교 가정의 의식구조를 그림자처럼 깔고 있다. 순자에게 남편 이삭은 절대적 선으로 나아오고 그가 일본 감옥에 갇혀 있다가 빈사상태로 석방되어 가족의 품에서 죽는 모습은 예수를 닮아보인다. 이삭은 순자에게 노아와 친자식 모자수를 남겨주고 떠나면서 사랑의 결단으로 시작된 짧은 부부관계를 통해 인생의 가장 선한 자세 즉 가족을 위한 희생과 고난을 극복하는 정신을 심어주었다.
미국 애플사의 TV자회사가 제작하는 드라마「파친코」가 방영되면 얼마나 큰 인기를 모을지 알 수 없으나 영화「미나리」에 이어 한국인을 소재로 하고 한국인 예술가가 만드는 작품이 세계의 문화·예술·연예 시장에서 속속 성공의 갈채를 받게 되기를 기대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정서와 의지가 비록 이 책의 기본 주제는 아니라도 소설의 바탕에 흐르니 책 속에서 이들과 만나게 해 준 작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