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마을 이장의 설명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가 마을에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는 건 순전히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였다. 지역이 균등하게 발전해야 하는데 위미마을의 개발은 타 지역에 비해 상당 부분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위미마을은 지금처럼 제주가 개발되기 이전 가장 발전하고 비옥했던 땅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곳은 봄처럼 따뜻한 계곡을 이루고 있는데 1,950미터의 한라산이 제주의 북서계절풍을 막아주어 눈과 바람이 가장 적고 포근한 기후였다. 다른 지역에 비해 일조량도 많아 제주 특산품인 감귤의 당도가 높고 맛있기로 유명하다. 이런 특징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감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포장만 한 뒤 ‘위미감귤’로 판매하기까지 한다니 과연 명성이 높았다.
“이렇게 위미마을이 부자 마을이었는데요, 이제 감귤은 중국에서도 많이 나오고 사양산업이 될 것 같습니다. 또 비농기에는 동네 일손들이 다른 마을 골프장에 가서 일을 합니다. 정작 우리 마을은 농사가 잘 되니 개발에서 뒤처지고요. 저희로선 억울한 면이 많죠. 그러니 회장님께서 우리 마을에 골프장을 지어주시면 일손이 다른 마을로 빠져나가는 일도 없고 감귤 사업을 대체할 사업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부탁드립니다.”
이장을 비롯해 청년회장, 새마을 지도자들의 어떻게든 마을을 살려 보겠단 마음이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마을의 지도자들이 젊은 세대로 세대 교체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란 생각에 나도 수긍은 했지만, 막상 골프장을 짓자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이미 많은 것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그들이 30년 간 임대해 주겠다 제시한 목장 부지는 30만 평으로 그 정도면 골프장을 시작하는 데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취지도 좋고 부지 확보도 염려가 없으니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럼 됐습니다. 다만 제가 직접 골프장을 짓긴 힘듭니다. 원래 골프장이란 대기업처럼 자금력이 튼튼한 곳에서 하는 사업이잖습니까. 그러니 제가 골프장을 건설할 기업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지을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서울에 올라가 골프장을 지을 만한 기업을 알아보는데 아뿔싸 웬만한 기업은 이미 골프장 사업으로 제주도에 내려가 있는 상태였다. 순간 괜한 약속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얼마 뒤 다시 제주도로 내려가 그들과 마주앉아 상황을 설명했다. 아무리 알아봐도 골프장을 지을 만한 회사는 이미 지었고 더 이상 골프장을 지을 만한 회사를 찾지 못해서 이 일은 안 되겠다고 설명하니 그쪽에서 펄쩍 뛰었다. “회장님, 안됩니다. 지금 제주도에 골프장 승인이 30개까지만 가능한데 딱 한 필지만 남아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그걸 승인받지 못하면 다른 마을에서 가져갑니다. 그럼 우리는 뭐가 됩니까. 도와주세요.”
진퇴양난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나는 중간에서 소개만 할 생각이었는데 예상대로 되지 않자 모든 책임이 내게로 돌아오고 있었다.
강국창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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