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지역에서 나사렛(Nazareth)은 지금도 낙후된 곳이다
나사렛은 갈릴리에 있는 성읍으로 요셉, 마리아, 예수의 제2의 고향이다. 성가브리엘 교회 근처에 있는 샘물은 광장에 있는 ‘마리아의 우물(Well of Mary)’까지 흘러간다. 의심할 여지 없이 마리아는 이 우물물을 길었을 것이다. 누가복음 1:26은 천사 가브리엘이 이곳의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었다고 선포한다. 마리아가 예수를 베들레헴에서 났고 그길로 애굽에서 피난생활을 하였음에도 예수의 고향을 나사렛이라 했으며(마 2:23), 제자들도 그렇게 불렀다.(행 24:5) 예수께서 헤롯이 죽고 난 후에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지만, 유대에 남아 있던 아켈라우스의 공포정치 때문에 나사렛에 정착했다.(마 2:20-23)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어린 시절의 두 사건은 분명히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다는 것을 증거한다.(눅 2:39,51) 수태고지교회 주변의 주거단지 내에 있는 ‘요셉의 목공소(Carpenter Shop of Joseph)’는 이 사실을 다소나마 뒷받침하고 있다.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려고 주님은 나사렛을 떠나 요단강 쪽으로 가서 세례를 받고 광야로 들어가시기로 작정하셨다. 나다나엘이 말한 나사렛은 요한복음 1:46에 나타나 있다. 빌립이 나사렛 예수를 만났다고 말했을 때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나지 못하리라”(요 7:41,52)라는 그 당시 전통적인 생각을 반영한 것이고, 나사렛의 평판도 다른 고을보다 좋지 못했으며(눅 4:28, 마 13:58, 막 6:6 참조), 나다나엘은 자기 고향인 가나에 비하여 보잘것없다고 시기해서 한 말이다.
시험받은 뒤 예수께서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으로 가신 것은 이사야 9:1의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이었으며(마 4:13-16), 나사렛에서 예수에 대한 첫 배척이 있었다는 사실을 누가가 기록한다.(4:16-30) 이 말씀 속에 등장하는 낭떠러지는 지금도 나사렛에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절벽이었던 남쪽과 서쪽으로 이어진 ‘낙하의 언덕(Hill of Precipitation)’ 또는 ‘도약의 산(Mt. of the Leap)’으로 불리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가까운 근처의 벼랑으로 고대에는 회당이 있었던 곳이다. 나사렛에서 예수의 두 번째 배척(마 13:54, 막 6:16)은 예수의 제2차 갈릴리 사역 중에 일어났다. 예수께서 회당에서 성경 읽으실 때 사람들이 다시 그를 대적했다. 예수께서는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마가는 또 다른 이유를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막 6:4 이하)라고 기록한다.
요셉은 마리아가 만삭이 되었을 때 로마제국의 명령을 따라 호적을 등록하기 위해서(눅 2:1)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갔으며, 마리아는 그곳에서 예수를 낳았다. (눅 2:4-7)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을 뵈려고 멀리 떨어진 길을 온 동방 박사들은 헤롯이 있는 예루살렘 왕궁으로 찾아갔다. 왕이 태어났다면 왕궁에 있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정적을 두려워했던 헤롯은 자극을 받았으며, 동방 박사들이 자신의 기대와는 다르게 다른 경로를 통해 고국으로 돌아가자(마 2:1-12)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아래의 모든 아이를 죽였다. 천사의 경고를 받은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했다가(마 2:13-18) 천사로부터 헤롯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되돌아오게 되었다. 하지만 요셉은 베들레헴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갈릴리 나사렛으로 갔다. 성경은 그 이유를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마 2:22)라고 말한다.
요셉이 두려워했던 아켈라오는 헤롯이 말다게에서 얻은 장자였다. 그는 매우 잔혹하고 억압적인 통치를 일삼았다. 그러자 유대와 사마리아의 귀족들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대표단을 파견해서 아켈라오의 폭정을 알리고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위협하여 아켈라오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아켈라오는 기원후 6년에 권좌에서 쫓겨났다. 이런 역사적 상황을 고려할 때 요셉이 아켈라오를 두려워해 유대 지역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자신과 마리아가 살던 나사렛으로 발길을 돌렸던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리적으로 나사렛은 하부 갈릴리 지방에 있는 도시로서 서쪽의 지중해와 동쪽의 갈릴리 바다 사이에 중간 정도에 자리잡고 있다. 나사렛은 동쪽과 북쪽에 가파른 언덕이 있으며, 서쪽에는 488m에 달하는 높은 산이 있으며, 남쪽만 열려 있는 분지에 자리잡은 고립된 도시였다.
지금도 나사렛은 낙후된 지역이다. 순례자를 태운 버스가 좁은 골목길을 곡예 하듯이 운전하면서 꼭 막힌 길을 빠져나가다 보면,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로마식 대도시로 반드시 들려야 할 세포리스는 건너뛰고 일몰 시각에 쫓겨서 가나의 혼인잔치기념교회를 철문 틈새로 들여다보고 갈릴리 호수로 내려 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나사렛이 분지 형태이다 보니, 겨울 우기만 제외하고 항상 찜통과 같이 푹푹 찌는 장소이다. 예수 당시의 나사렛 절벽에서 돌을 주워다가 건축한 투박한 회당을 가려면 좁다란 골목길과 시장을 지나가야 하는데, 찾는 이가 없으니 관리인도 사라지고 없어서 대부분 문을 잠가놓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베들레헴 다음으로 이스라엘 땅에서 기독교인의 분포도가 가장 많은 나사렛에서 반드시 예수의 숨결을 찾아보면서 그 지역의 주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슬림 선교의 틈새를 열어야 한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성서신약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