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쓴맛을 보며 하루를 연다. 마치 인생의 쓴맛처럼, 다름 아닌 ‘커피 한 잔’의 유혹으로 시작된다. 눈 뜨자마자 또는 출근과 동시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직장인들의 즐거움이자 적(敵)이다. 언제부터인가 커피는 일상이 되었고 습관이 되었다. 중독이 따로 있나. 선택이 아니라 반복되면 중독이다.
대한민국 국민 1인당 1년에 몇 잔의 커피를 마실까.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기준 1년에 커피 353잔을 마신다고 한다. 하루에 1잔은 마신다는 의미인데, 세계 평균 소비량 132잔의 2배 이상이다.
커피 보급의 시작은 천 년이 넘게 걸렸다. 아랍인은 지중해를 넘나들며 유럽과 활발히 교역을 이어나갔고 그 와중에 커피가 점차 유럽인에게 퍼져 나갔다. 17세기경부터 유럽 전역에 유행처럼 번져 나갔으며 네덜란드와 프랑스 사람들을 통해 아시아와 중남미로 보급되며 브라질과 콜롬비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같은 커피 최대 생산지들이 생겨나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전문점은 20세기 초, 독일인 러시아 공사의 처형인 손탁(Antoniette Sontag, 1854-1925)이라는 독일계 러시아 여인에 의해 들어섰다. 정동에 세운 한국 최초의 호텔인 손탁호텔 안에 첫 커피숍을 개업한 이후 일제 강점기에는 명동과 소공동 등지에 일본식 다방들이 생겨났다. 대중 보급은 6.25전쟁 이후 미군들의 식량에 속해 있던 인스턴트커피가 익숙해지고 인기를 얻어 본격적으로 시판되면서부터다.
커피 한 잔이 주는 선물은 분명 매혹적이다. 커피 한 잔의 유혹은 쉬지 않고 다가온다. 이런 유혹에는 후유증이 반드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이유는 중독성 때문이다. 한 잔 마시면 기분이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고 집중이 잘 된다. 가끔 안 마시면 뭔가 허전하고 집중이 안 되는 이 느낌은 뭐지 싶다. 어찌보면 ‘카페인 부작용’이나 ‘카페인 중독’같기도 하다. 정말 커피 한 잔은 약일까? 독일까?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고 집중력이 생기는데 반해 너무 많이 마시면 밤에 깊은 숙면을 하지 못한다. 필자의 경우, 커피의 민감성은 오후 2~3시 이후에 커피를 마시면 수면의 질이 떨어져 밤 12시경 잠깐 잠들었다가 새벽 2, 3시경에 깨면 화장실에 갔다오면 그 다음부터는 다시 잠들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아침이면 몽롱하고 그 잠에서 깨기 위해 다시 커피를 마시는 일이 반복된다.
커피가 가진 카페인 성분은 두 얼굴로 나타난다. 뇌를 각성시키지만 반면 두통과 신경과민, 불안, 현기증을 가져다 준다. 심장박동수를 증가시켜 가슴 두근거림, 혈압 상승을 유발하기도 한다. 위산 분비를 촉진시키다 오히려 위궤양, 역류성 식도염 등 위 질환을 주기도 하고, 철분과 칼슘의 흡수를 방해해 빈혈이나 뼈의 성장을 저해한다. 한국인들은 칼슘 섭취가 부족한데 하루에 3잔 이상 커피를 마시면 칼슘의 배출로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이런 커피가 알츠하이머 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흥미롭다.
건물마다 커피 전문점이 많이 생겨나고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이 테이크아웃 컵을 손에 든 채 길을 걷는 광경을 보게 된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사용하는 일회용 컵, 캡슐과 캔 음료 등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생각하면 커피가 만들어내는 폐기물의 양은 엄청나다. 1g의 원두에서 커피는 0.002g, 나머지는 커피 찌꺼기로 버려진다. 기후위기의 환경 변화에서 비상행동이 필요한 때에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며 이것을 재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일회용 컵 등 쓰레기를 최소화함으로 환경호르몬도 줄이고 지구도 보호할 수 있다. 한 잔의 커피의 유혹 앞에서 지혜롭게 일회용 컵 대신 머그컵이나 텀블러를 사용해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이는 습관은 어떨까 싶다.
이효상 목사
•근대문화진흥원장,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