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의소리] 농인의 사회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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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필자가 농인이 아니기 때문에 농인이 느끼는 감정을 얼마나 제대로 느낄 수 있는가를 종종 돌아본다. 오랫동안 농인을 만나 그들을 다소 이해하는 편에 서 있다고는 하나 불쑥불쑥 드는 감정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이해가 안 되는 것들도 종종 있다. 이러한 일은 농 세계에 몸담고 있는 청인들은 대동소이하게 느끼리라 추측된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그들도 같은 사회 환경이지만 우리와 상당히 다른 점을 발견할 때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 생각해 본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그 이유 중에 하나는 한국은 유교적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미국은 기독교적 사고로 생활하는 나라이기에 농인을 대하는 태도와 이해가 다르다고 생각된다. 둘째로 미국은 이러한 바탕에서 시작된 농인들에 대한 체계적 교육의 역사가 우리나라보다 길다. 이러한 점들이 농인을 지도할 농인 지도가를 많이 배출하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농인 중에 유명한 사람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대부분 운보 김기창 화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또 누구 아는 분 있는가 하면 머뭇머뭇 거리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농 사회를 보면 농인 중에 유명한 사람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영화배우, 야구선수, 농구선수, 교육자, 비행기 조종사 등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미국에서 웬만한 사람이면 알 수 있는 농인들의 이름을 대곤 한다. 이러한 차이는 농문화를 대하는 청인들의 태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교단 총회장님이나 대형교회 당회장 부속실에 젊은 여성 농인을 배정한다고 하면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미국 오바마 대통령 시절 당시 28세의 라틴계 젊은 농인 여성이 대통령의 접견을 담당하는 일에 배정이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헤르난데스(Leah Katz-Hernandez)로 갈로뎃 대학교 출신이며 농인으로는 처음으로 백악관에서 접견 담당일로 근무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백악관에서는 한때 수어를 배우려는 분위기가 팽대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오바마 대통령 선거 캠프에 참여하였으며 백악관 인턴 시기를 거쳐 백악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헤더 리 화이트스톤(Heather Leigh Whitestone)은 18세에 청력을 잃었지만 1994년 알리바마 주 미인대회에 여왕으로 선출되었으며 다음해인 1995년에는 미 전역 미인대회에서 여왕으로 등극하였다. 농아대회에서가 아니고 미 전역의 미스 아메리카 대회에서 당당히 여왕으로 자신의 자긍심을 세웠다.

그녀는 이후 대통령소속 장애인위원회 노동분과위원으로 일했으며 4권의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농인들이 서구의 다른 나라만큼 사회에 다양하게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마음껏 다양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들을 수 없기에 교육 과정 중 각 분야에 다양하게 전문적인 수어 통역사의 배정이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이를 위해 교육 당국을 비롯해서 우리 사회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 농인의 사정이 일반인들에게 잘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라도 그들의 보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 중에서 농인에게 관심 있는 교회는 과연 얼마나 될까? 35만 농인들의 선교에 대한 관심을 가진 기독교인은 얼마나 될까?

안일남 장로
<영락농인교회·사단법인 영롱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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