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도했던 16세기까지만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은 지극히 제한된 것이었다. 신대륙의 발견 이전이었으므로 유럽인들은 지중해연안이 세계의 전부라고 알고 있었고, 태양과 다른 천체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었다. 그때까지 우주와 생명의 기원, 인간의 탄생에 대해 가장 권위있는 기록은 구약성경 창세기뿐이었다.
그런데 이후 500여 년간에 걸쳐 일어난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콜럼버스 이후 지리상의 발견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갈릴레오와 케플러는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돌고 있으며 지구는 그중 하나의 행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간결한 이론 하나로 세상의 모든 물체의 운동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세기 중반 다윈은 인간과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진화론을 발표함으로써 엄청난 논란을 불러왔다.
우주에 대해서는 20세기 초까지도 별로 알려진 것이 없었으나, 1905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발표된 이후 물리학과 천문학이 엄청난 성공을 거둠으로써 우리는 우주에 대해서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인 지식을 갖게 되었다. 과학이 거둔 이러한 성과로 인해 이제 우주, 지구, 생명에 대해 거의 완전한 전모를 파악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이 밝혀낸 우주의 역사를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부터 약 138억년 전 빅뱅이라는 대폭발에 의해 우주가 시작되었고, 그 이후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다. 우주는 수천억 개의 은하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은하는 또 수천억 개의 별들의 집합체이다. 대부분의 별들은 주위를 도는 행성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우리의 지구는 약 45억년 전 태양계와 함께 3번째 궤도를 도는 행성으로 탄생했다.
지구상 최초의 생명체인 미생물이 약 35억년에 나타났고, 5억여 년 전에 최초의 동식물이 출현하였다. 인류의 먼 조상은 약 6백만년 전에 아프리카에 나타났고, 현생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20만년 전에 나타났다. 기원전 일만년부터는 농경이 시작되고 우리가 잘 아는 역사시대가 전개된다.
1991년 이같은 138억년의 우주의 역사 전체를 빅 히스토리라 명명하고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사람이 호주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크리스천이다. 지금은 세계의 여러 대학에서 빅 히스토리를 가르치고 있고, 빌 게이츠도 관심을 갖고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라는 국제프로그램을 후원하고 있다.
빅 히스토리는 역사학과 함께 천문학, 지질학, 생물학, 인류학 등 첨단 과학의 연구성과를 아우르는 종합학문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특히 최근 코로나 사태로 역사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빅 히스토리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최근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베스트셀러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에 출현한 작고 보잘것없는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는가를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설명하였다.
프랑스의 가톨릭신부 테야르 샤르댕은 1950년대 장대한 우주의 진화가 궁극적으로 오메가 포인트를 향해 가고 있다는 신학적 해석을 발표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1970년대에는 역시 가톨릭신부 토마스 베리가 『우주이야기』라는 책에서 우주의 긴 역사적 맥락에서 인간이 어떻게 지구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 비판적 통찰을 제시하였다.
우리 개신교에서도 과학이 밝혀낸 우주의 역사를 신앙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빅 히스토리가 곧 쓰여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완진 장로
• 서울대 명예교수
• 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