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文) 대통령의 지지율이 29%까지 하락했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선거 결과로 이어졌지만 이는 이른바 MZ세대가 문 정부 주동의 586 정치인들에게 보낸 경고였음이 드러났다. 「586」은 1960년대에 태어나 30대에 1980년대의 풍족한 시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혁명~했던 「386」운동권으로서 일컫어 아날로그형 50대 정치인들이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2000년대 초에 출생한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의 소위 Z세대 기간에 출생한 20~30대들로서 침체 경제, 취업 지옥, 불공정 등의 악조건 시기 속에서 살고 있는 세대다. 그들은 디지털 시대에 익숙하고 집단보다 개인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개선(개혁)과 혁신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MZ세대는 586들에게 말한다. 다음은 현대자동차그룹 MZ세대 사무·연구직 직원들이 SNS에 올린 글이지만 「혁명~」 등의 전투적 단어쓰지 마세요! 「빨간 머리띠 두르고 노동가요 부르지마세요!」 이들의 목소리에서 이젠 혁명시대가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개선은 사안에 따라 개혁, 변혁, 격변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만 어느 경우든 혁명은 아니다. 요컨대 개선은 잘못된 것 따위를 고쳐 더 좋게 만듦의 패러다임이다. 오늘날 「4차산업혁명」에서의 「혁명」호칭은 실제는 혁신(革新)이다. 산업계에서는 개선을 혁신이라 한다. 그런데 개선·혁신은 양자 공히 선(善) 패러다임이다. 586이 혁명 스타일로 돌을 던진다면 MZ는 투표지를 던져 개선을 촉구한다.
대저! 혁명(革命)은 국체 또는 정체를 파괴시킨다. 그것은 비합법을 수반함으로 파괴와 피를 부른다. 러시아 공산혁명, 멕시코 혁명, 4·19 혁명, 프랑스 혁명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왕정이 공화정으로 바뀌고 헌정(憲政)틀이 바뀐다. 그런 면에서 「촛불」은 혁명이 아니었다. 당시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에 촛불을 든 것은 국정농단 현상을 개선하라는 것이었지 혁명을 하자는게 아니었다. 촛불시위 주동은 좌파 성향의 586이었지만 참가자 대다수는 상식(常識)의 시민(市民)들이었다. 그들은 결코 시위 중에 정치 경제 안보 외교 등 국가의 근본 틀을 바꾸라는 혁명적 요구를 하지 않했다. 그런데도 586 주동의 문 정부는 「촛불」을 촛불혁명으로 규정하고 스스로 촛불혁명정부로 자리매김했다. 소위 적폐 청산정치는 그런 혁명 분위기에서 나왔다. 세종시 교육청이 「촛불혁명」이란 제목의 책을 관내 99개 초·중·고교에 배포한 것이 그 증거다. 문제는 그 여파로 온 나라가 평안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 촛불이 경제소란·「내로남불」을 불렀기 때문이다. 역사를 회상하면 근세 이후 20세기 말까지 세계적으로 연속되었던 혁명은 21세기 어느날 자취를 감추고 개선(改善)이 등장했다.
그러면 정치경제사회에서 「개선」은 무엇인가? 산업혁명 당시 아담 스미드가 격변하는 인간 사회의 제도를 조화의 방법인 소위 「보이지 않는 손」을 확신했던 것은 도덕적인 개선이었다고 보는 학자가 많다. 그 도덕은 본질적으로 화평과 사랑이다. 보이지 않는 손,「국부론(國富論)」이 출간된 지 2백년이 지난 오늘! 이 고전을 다시 오늘 우리의 정치 경제발전에 비추면서 이제 개선의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 미국 아메리칸 대학의 화이트 교수는 인간 사회의 발전은 진실로 개선(Improvement)뿐이라고 단정했다. 혁명(Revolution)의 성과는 언제나 구호일 뿐이고 만약 이것이 현실로 나타나면 평화 파괴가 뒤따른다고 분석했다. 지난날 폴란드의 노조운동가 바웬사는 혁명적인 노조운동으로 집권해 본 후 자유시장의 개선경제원리처럼 진실된 게 없다고 실토했음은 유명하다. 오늘 586 집권주동세력은 임기 말을 앞둔 문 대통령의 그간의 국정이 계속 혁명 스타일이 아니였는지 따져 이제부터라도 개선하기 바란다. 혁명 스타일에 길들여지면 잘못된 것이 마치 옳은 것으로 묻혀지게 되면서 사회가 평화롭지 않게 된다. 성경은 이른다.「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전 1:4~5)
586 등 한국의 기성 정치인들이여! 새로 뜨는 MZ세대의 개선 의견을 무시하지 마시라!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시라! 인류의 진정한 혁명가인 예수의 주창은 깊은 도덕성, 곧 사랑과 평화였다.
김동수 장로
<관세사·경영학 박사·울산대흥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