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란 무엇인가? 한글대사전은 지혜를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이라고 정의했다. 부연하면, 지혜란 공정하고 올바르게, 사리를 분별, 판단하고, 상황과 경우에 맞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슬기’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그런데 지혜는 지식이나 학식과는 딱히 관련이 없는 말로 인식되고 있다. “배운 것은 없어도 지혜가 많다”든가 “배운 것은 많은데 지혜가 부족하다”고 하는 말들을 보면, 지혜는 지식이나 학식과 관련이 없을뿐더러, 이와는 대치되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혜에서 중요한 것은 많은 지식이나 학식보다도, 올바른 판단력과 옳고 그름을 가질 수 있는 분별력이라고 여긴다.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께 백성들의 송사를 잘 듣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나님은 이 요구를 가상히 여기시고,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셨다고 했다. (왕상 3:5-12)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의미의 ‘지혜’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또 다른 의미로 ‘지혜’가 사용되었다. ‘지혜’는 지식, 학식, 학문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에는 이들 두 가지 의미의 ‘지혜’가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솔로몬 왕의 지혜가 동쪽(앗수르, 바벨로니아를 뜻함)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그가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해서 말한지라.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으니….” (왕상 4:30-34) 여기서 말하는 솔로몬의 지혜는 통상적 의미의 지혜가 아니다. 솔로몬의 많은 지식과 높은 학식, 즉 솔로몬의 박학다식함을 ‘지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혜’가 어떻게 해서 지식, 학식, 학문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는가에 관해서는 조금 긴 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우리들의 시선을 구약의 넓은 세계에 돌릴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의 남쪽에 위치한 애굽으로부터 동쪽으로 앗수르, 바벨론 제국의 땅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을 서구의 학자들은 ‘고대 근동 지역’(Ancient Near East)이라고 불렀다. 유럽 세계에서 보면, 가까운 동쪽이기 때문에 ‘근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유럽에서 보면, 한국은 동쪽 끝에 있기 때문이 ‘극동’(Far East)이라고 불렀다. ‘근동’이니 ‘극동’이니 하는 말은 유럽 세계를 기준으로 해서 부른 것이므로, 우리로서는 그리 탐탁한 용어는 아니다.)
주전 3000년경부터 고대근동지역에서는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동하며 생활하는 수렵 단계를 마감하고, 농업 문명으로 전환하고 정착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벽을 둘러쌓고 작은 도성들이 생겨났고, 수장이 되는 왕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도시국가(city-state)들이 형성된 것이다. 왕을 중심으로 한 조정에서는 행정 업무를 기록할 필요성이 생겼고, 결국 애굽에서는 상형문자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쐐기 문자(=설형 문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로써 문자 기록 시대가 열리게 되었고, 왕실 조정에서는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관리가 중요하게 되었다.
박준서 교수<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