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한 초등학생의 꿈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자신 커서 되고 싶은 것이 건물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놀면서 때 되면 임대료를 또박또박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아이는 일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돈만 있다면 일하지 않고 놀려고만 생각한 것이다. 이 아이가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하게 될지 참 걱정스러웠다.
우리 속담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을 벌어서 정승같이 떵떵 거리고 산다라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다. 본래의 뜻은 아무리 미천하고 험한 일로 돈을 벌더라도 그 돈을 쓸 때는 뜻있고 보람 있게 쓴다는 것이다. 이 속담이 좋은 교훈을 담고 있다고 해도 아쉬운 점이 있다. 아무리 미천하고 험한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것을 개같이 번다고 표현한 것이다. 도대체 개같이 번다면 일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종교개혁자 칼뱅이 쓴 [기독교강요]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하나님이 오로지 필요를 채우시려고 음식을 지으셨겠는가? 즐겁고 유쾌한 기분을 위해서는 아니겠는가? 옷을 주신 목적 또한 필요에 그치지 않고 단정함과 품위를 지키게 하시려는 게 아니겠는가?” 칼뱅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치 않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일을 주신 것은 그저 먹고 살고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상의 이유가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이유를 찾고 그것에 합당하게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골 3:2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서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무슨 일을 하든지”라는 말씀이다. 그 일이 천한 일이든지 귀한 일이든지, 그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든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든지, 그리고 그 일이 직접 주의 이름과 관계된 일이든지 그렇지 않은 일이든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그 일을 하라는 말씀이다.
다음으로 전 3:22를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 정말 지혜로운 것이라는 말이다. 창세기 1:2에서 2:3까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위해 하신 구체적인 일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 속에서 주목할 것인 한 가지 있다.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말씀이 무려 일곱 번이나 나온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좋다고 감탄하시면서 일하셨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주님처럼 일할 때 그 일이 무엇이든지 이렇게 즐거워하면서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창 2:2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쉬셨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만이 인간의 삶에 가치 있고, 쉼은 필요악으로 여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쉼은 어쩔 수 없이 필요한데 그것도 일하기 위해서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쉬지 않으셔도 계속 일할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셨다. 왜 쉼을 만드시고 쉬라고 명하셨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최근 워라밸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다. 이 말은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이다. 이 워라밸은 쉼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준다. 단지 쉼은 일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를 풀게 해 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쉼은 무엇보다 일과 가정, 일과 나 자신의 삶의 균형을 이룰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이 쉼은 일을 뛰어넘어 자아실현을 가능하게 해 준다. 그래서 쉼은 결과적으로 일의 효율성도 높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쉼의 의미를 깨닫고 잘 쉬어가며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박봉수 목사
<상도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