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산군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6월 28일 11시 30분경 탱크를 앞세우고 서울 종로 한복판에 나타났다. 국군이 모두 후퇴한 상황이었으므로 큰 저항을 받지 않았다. 150만 시민들 중에는 피난 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서울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침략군에 대해 별로 두려움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탱크를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이상한 점은 공산군이 서울 점령 후 계속해서 남하하지 않고 휴식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당시 국군은 파죽지세로 밀리고 있었으며 희생된 군인이 많아 건제부대를 유지하는 것조차 불가했다. 따라서 계속 밀고 내려갔다면 적화통일이 쉽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왜 서울에서 3일 동안 쉬었느냐 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스탈린의 거부권행사 포기와 같은 맥락에서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러 상황이 지나간 다음 김일성으로부터 전투재개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부서진 한강다리를 보수해서 작전을 전개하는 데 또 2일이 걸렸다. 결국 5일 후(7월 3일)에나 전투가 재개됐던 것이다. 그동안 국군은 패잔병들을 모아 부대를 재편성할 수 있었고, 미군도 부산에 상륙(7월 1일)하는 시간을 벌었고, 6월 30일 맥아더 사령관이 서울 한강시찰(흑석동 언덕)을 다녀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맥아더는 그때 지상군의 참전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고 워싱턴에 지상군 파병 요청을 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김일성이 적화통일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점이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을까!
북한군이 서울에서 멈추어 있으면서 전투를 전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많은 의문점이 있지만 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군사 전략가들은 북한의 전투명령이 ‘서울 점령’까지만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제한전쟁’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학자들은 김일성이 박헌영이 주장해 온 「서울만 점령하면 남로당원 20만 명이 일제히 봉기하여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모두 일리는 있지만 정확한 해답은 아니다. 김일성의 남침은 단독 범행이 아니라 소련의 세계 공산화 전략의 ‘틀’ 속에서 감행됐다. 따라서 스탈린의 전략 구상에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다. 즉 스탈린의 계산법에 달려있는 뜻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북한군이 서울 점령 후 전투를 중지하고 휴식에 들어간 것은 「한강을 넘지 말라」는 스탈린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것이 정답이다. 당시 남침을 위한 공격 계획이나 작전명령도 인민군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 소련군이 작성했다. 이것을 인민군 작전참모로 특채된 유성철(兪成哲: 소련군 출신의 고려인, 인민군 중장) 장군이 러시아어로 작성된 원문을 한글로 번역하여 김일성에게 보고해 왔다. 그 작전명령서도 서울 점령까지만 되어 있다.
그러면 스탈린은 왜 한강을 넘지 말라고 했을까?
① 김일성과 박헌영의 말(인민봉기설)을 쉽게 믿었다. 김일성은 남침하기 전 남침 허락을 받기 위해 3번이나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스탈린은 처음 2번은 거절했으나 3번째 승낙했다. 그 이유는 3번째는 박헌영을 대동하고 와서 남쪽에 심어 놓은 20만 명의 남로당원이 있으며, 서울만 점령하면 인민봉기가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 후 승인받았다. ② 한강을 넘지 않으면 국내 문제로 해석되어 외국군의 참전을 막을 수 있지만, 한강을 넘으면 내전이 아니라 국가 간 전쟁으로 인식되어 외국군의 참전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③ 6월 28일 김일성이 서울에 왔다. 중앙청 귀빈실에서 축하연이 벌어지고 있을 때, 일선 지휘관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전선사령관 김책, 3사단장 이영호 소장 등이 ‘한강을 넘게 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김일성은 ‘누가 그걸 모르오. 그러나 모스크바의 생각은 인민봉기를 선동하라는 것이요. 바실리에프(군사고문단장)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소’ 하며 거절했다. 스탈린은 6월 30일 미 지상군 파병이 결정되자 한강을 넘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박헌영의 말을 믿은 것은 군사전략가 답지 못한 행동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신 것이다.
침략자 스탈린을 그냥 두시지 않고 뇌를 자극하여 번민케 하시고 최악의 길로 인도하셨다.
배영복 장로<연동교회>
• 한국예비역기독군인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