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전방부대 군목 시절의 기억 중에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생각난다. 물론 그런 경고문이 밖에 내걸린 것은 아니지만 병사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주의사항 중 하나였기에 생생하게 기억한다.
강원도 양구의 최전방 부대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은 길이 아닌 곳엔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지뢰가 곳곳에 매설되어 있어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병사들 중에는 말년에 주의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더덕을 채취하러 길이 아닌 곳에 들어갔다가 그만 지뢰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전역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병사가 지뢰를 밟아 큰 사고를 당하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짧은 군목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죽어간 병사 다섯 명의 장례를 치른 것은 지금도 가슴 아픈 기억이다.
나는 그동안 길을 만드는 목회자라는 자부심으로 30여 년 나섬의 사역을 해 왔다. 밑바닥 나그네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특수목회 현장이란 얼마나 힘들고 거친 삶이었던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두려움과 설레임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나는 종종 ‘내가 가면 길이다’라는 말을 하곤 하였다. 그러나 사실 이 말처럼 무모하고 어리석은 말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면 모든 것이 길이라는 말은 얼마나 위험하고 오만한 표현인가? 제대로 난 길만이 길이다. 아무 곳이나 간다면 죽음의 계곡으로 가는 길일 수도 혹은 벼랑 끝 낭떠러지로 가는 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길다운 길을 가야 그것이 길을 내는 목회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앞으로만 가려 한다면 차라리 가지 않는 것이 낫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속도는 줄였다가 높였다가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하지만 방향이 올바르지 않으면 때로 속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삶이 매우 큰 위기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방향과 올바른 길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요즘은 내가 철이 들어가는지 과거의 삶을 반추하며 성찰하는 시간을 자주 갖게 된다.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올바른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하신 말씀을 다시 묵상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당신이 길이라는 선언은 생각하면 할수록 기막힌 말씀이다. 아무나 길이라 해서 그 길을 따라가 결국 패망한 사람들이 역사에 얼마나 많은가? 지금도 잘못된 길을 찾아 헤매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예수는 자신이 길이라 선포하신다. 바른 길을 가라 하신다. 바른 길이 아니라면 차라리 가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