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여서 자신들이 처한 문제들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정치」를 한다. 대한민국은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의 계절에 들어섰는데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대면 모임이 일시 중단되는 변칙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지구 정반대편에 위치한 칠레, 군사독재와 비폭력 정권교체를 다같이 경험하여 우리와 서로 반면교사가 될 만한 그 나라도 오는 11월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금 각 정파가 대통령 후보 경선을 치르고 있다. 가톨릭국가인 그곳에서 사람들은 지지세력의 승리를 위해 많이 기도할 터인데 한편으로는 인간의 온갖 지혜를 짜낼 것이다. 그런데 그 지혜는 어디서 오나?
부럽게도 칠레의 전직 대통령 5인이 국가기념일 행사에 함께 참여한다. 1990년에 피노체트의 17년 독재가 막을 내린 후 좌·우파 간에 정권을 교환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1970년까지는 중남미 여러 나라들처럼 군부통치가 계속되다가 처음으로 민주적 절차로 집권한 아옌대 대통령이 급진 좌경 정책을 펴는 바람에 국민의 저항이 거세지자 이를 틈탄 군부가 3년만에 그를 몰아냈는데 기관단총을 메고 숨어 있던 아옌데는 그 총으로 자결했다.
피노체트는 좌파 지식인 저항세력을 무자비하게 처단했다. 정보기관 DINA의 요원들은 국외로 망명한 사람들을 쫓아가 암살하는 등 최악의 통치를 이어갔는데 비교적 순조로웠던 경제 상황과 역대 미국 행정부의 방관이 이를 가능케 했다. 집권연장을 위한 개헌 국민투표가 압도적으로 부결되자 피노체트는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민간정부는 군부와의 타협이 불가피해서 그에게 군최고사령관 지위를 부여하고 군 출신이 종신 상원의원직을 갖게 하는 등 기이한 제도를 만들었다. 피노체트가 죽은 후로도 얼마 동안 이런 체제를 유지하다가 또 한번의 개헌으로 군부의 특권을 많이 폐지했다.
국토가 남북으로 3,000킬로 뻗어 있어 미국의 동서 간 길이보다 길고 인접국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와는 사막과 험준한 산맥으로 차단되어 있어 국방의 위험이란 생각할 수 없는데도 군대가 내내 큰 세력으로 남아있다. 거기다가 스페인계 백인들이 절대다수인 인구구조 하에서 대 농장주들이 사회 상층부에 버티고 있어 좌·우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하지만 선거에 임하여서 10여개 정파가 중도우파, 중도좌파로 연립, 경쟁하는 것이 볼만하다.
해외 식자들이 대한민국을 바라볼 때 정치, 경제 상황의 역동적 변화 속에서 사회발전과 안정으로 나아온 데 대해 경이의 시선을 던지지만 우리 스스로는 근자에 나라가 급속히 잘못되어가는 듯해서 불안하다. 칠레와 마찬가지로 30년 넘게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해 왔는데 지난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투옥으로 한 차례 격변을 치렀다. 그 이후 4년여 동안 대한민국은 정당 간, 사회계층 간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오늘에 이르렀고 내년 봄 대통령 선거는 이 나라가 과연 내부적 갈등을 극복하고 국가공동체로서의 발전을 계속할 수 있을지 없을지 결정하는 고비가 될 것이다.
나라마다 고유한 역사적, 지리적, 인종적 배경에서 발생한 분열과 상극의 요인을 안고 있다. 그런 것들을 이겨내고 지역에서의 우위를 유지하는 데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탁월한 지도자가 출현하면 좋겠거니와 그 이전에 각 이익집단 간에 욕망을 절제하고 타협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겠다. 이 또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갑절의 기도를 해야 할 것인데도 눈앞의 사건들 쫓기에만 바쁘다.
김명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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