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본 삶의 현장] 2년의 기다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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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 01. 23.
편지가 너무 늦어졌습니다. 대학에 남는 일은 결국 과장 비서로 있는 일인데 보수가 적어 그것으로는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기전여고로 돌아가겠습니다. 그곳에서는 방학 중부터 와서 근무해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더니 언제까지 수학교사 자리를 비워 두고 기다릴 수 없으므로 12일 12시까지 책임이 따르는 회신을 하라는 강경한 독촉이었습니다. 그래서 3월부터 근무하겠다고 회답을 하였습니다. 같이 상의할 시간이 없어서 그리된 것을 용서하십시오.
2월 15일부터 18일까지 졸업시험, 19일 사은회, 20일 성경연구반 졸업예배, 21일 대학 졸업예배입니다. 1월 16일 자 조 교장 선생님의 편지 일부를 소개합니다.
(…오 선생의 하는 일과 미국에 빨리 가고자 하는 일이 서로 맞물려 마음의 방향을 흐리게 함은 당연한 일로 알고 나는 지금까지 기다리면서 주님의 뜻대로 그리고 오 선생님을 조금이라도 더 큰 그릇으로 들어 사용하실 것을 기대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선생님도 알다시피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언제까지 참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제 결심을 해야 하고 또 결심과 작정을 한 후에는 사회에서 이해할 만한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12일(1월)에는 신년도의 교사진용을 완성해야 합니다. 채용발표를 해야지요. 그러므로 오 선생님의 태도를 더 확실하게 나타내야 할 시일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직원으로 확정이 되면 학교 형편이 우선되어야지요. 인간 조○○은 늘 약하고 흔들리고 우유부단하지만, 학교는 그럴 수가 없지요. 학교의 명령은 엄할 것이며 학교는 사람들 때문에 손해를 볼 수 없어야 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이 주인인데 약속을 어길 수 없지 않아요? 언제 기전에 오시겠다는 뜻을 밝혀 주시면 그 사신을 받는 대로 채용 결정을 할 것입니다. 늦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12일 12시까지는 알아야 합니다.
오 선생님이 오시면, 부탁은 교회는 개척한 성암교회로 정해 주시고(태평동) 사택 관계는 학교에서 얼마를 빌려 얻는 방식을 취하시고, 담임은 고2의 어느 한 반을 맡아야 하실 것이며 따라서 고2의 수학을 가르쳐야 할 것이고… 등등입니다. 여학교 교사로서 기쁨을 갖고 부임할 결심이 있으시기를 빌고 펜을 놓습니다.)
모든 내용에 동의하고 2월 22일까지는 집을 하나 구해 달라고 기전여고에 부탁했기 때문에 그때쯤 화물을 보내고 24일(수요일)에는 전주에 오도록 하십시오. 저는 이달 23일까지 가정교사 자리를 정리하고 서울 동생 집에서 한두 주정도 지내면서 국립도서관에서 간단한 자료를 좀 수집하겠습니다. 이것은 내가 수련회를 통해 훈련한 기도의 결과입니다. 주님께서는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2년 전 전주를 떠날 때의 생각이 납니다. 독수리라도 잡을 듯한 기상으로 떠났는데 부모님과 당신에게 덧없는 고생만 시켰습니다. 이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허울 좋은 욕망의 낙오병들을 이끌고 옛 성터로 귀환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뒤늦게 믿기 시작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적은 없습니다. 기전여고에 갈 때부터 나는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길을 따라 걸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기전을 떠날 때, 같이 학교를 잘 해보자고 붙들어 준 분을 뿌리치고 떠났는데 이렇게 다시 거두어주니 조 교장께 감사할 뿐입니다. 또 대전대학에서 공부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결국 나일 수밖에 없지만, 이년 전의 나와는 차원이 다른 내가 되어 있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연단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쓰실 것을 믿습니다.

오승재 장로
•소설가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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