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신앙의 대원칙이 있다. 그것은 여호와(=야웨) 하나님만 믿고 섬기며 예배해야 한다는 ‘절대적 유일신 신앙’의 원칙이다. 이 신앙의 원칙에 관한 한 어떠한 예외나 타협이란 있을 수가 없다. 출애굽기나 신명기에 가나안 원주민들과 혼혈결혼을 금지한 것도 이스라엘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혼혈결혼으로 야기될 신앙의 오염을 막고 유일신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출 34:16; 신 7:3-4)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신앙의 원칙을 지키며 살기 위해서 이스라엘 밖의 외부세계와는 단절된 고립된 삶을 살았을까? 그렇지 않다. 신앙의 대원칙에 반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은 주변의 이방문화에 대해서 지나치게 배타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이방문화도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였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이스라엘은 이방문화를 받아들인 후, 이들을 이스라엘 신앙이라는 큰 그릇에 담아 이스라엘 ‘신앙화’시켜 ‘이스라엘의 것’으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본다. 구약에는 3대 종교 절기가 있다. 유월절과 무교절, 초실절 (77절, 맥추절이라고도 함), 그리고 초막절이다. 이들 절기는 원래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이 지켰던 농업 절기와 관련이 있다. 가나안 원주민들의 3대 농업 절기는 ① 봄의 보리 추수 절기, ② 초여름의 밀 추수 절기, ③ 가을에 올리브, 포도 등 과일 수확 절기들이다. 이스라엘은 이들 농업 절기를 받아들이고, 이스라엘 역사와 연계시켜 ‘이스라엘의 종교 절기’로 전환시켰다. 즉 봄의 보리 추수 절기는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과 ‘무교절’로, 가을 과일을 수확하는 절기는 시내 광야 생활을 재연하는 ‘초막절’로 전환시켰다. 단, 초여름 밀 추수 절기는 원래 농업 절기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여 초실절(初實節)이라고 불렀고, 유월절로부터 50일 후에 오는 절기라서 ‘77절’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다가 바벨론 포로기 이후부터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로 지켰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본다. 예루살렘 성전에 관한 것이다. 성전의 구조를 보면, 3중 구조로 되어있다. 성전 문을 들어서면 ‘낭실’(=현관)이 있고, 그 다음 ‘성소’(=외소)가 있다. 다음에는 법궤가 안치되어있는 ‘지성소’가 있다. 이렇게 낭실, 성소, 지성소의 3중 구조이다.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주변 나라들에서 이방신들을 섬기던 수많은 신전들을 발굴해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구조가 예루살렘 성전 구조와 똑같은 3중 구조로 되어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솔로몬 왕은 당시 보편화되었던 신전의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곳이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으로서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은 이방 문화도 이스라엘 신앙에 흡수하고 ‘신앙화’하여 이를 이스라엘의 것으로 전환시켰다. 이것이 이스라엘 신앙의 창조적 힘이다.
구약의 잠언에는 이방나라의 잠언도 들어와 있다. (잠 30, 31장) 이스라엘은 이방의 잠언들이라 해도 교육적으로 훌륭한 잠언들은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들은 ‘신앙화’의 과정을 거쳐 ‘이스라엘의 잠언’으로 만들어서 구약에 수록되었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