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독일이 자랑하는 근대 철학자로서, 마부르크 대학과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를 지냈다.
그의 대표작은 《존재와 시간》, 《철학에의 기여》, 《기술에 대한 논구》등이다. 하이데거는 뼛속까지 친나치주의자였다. 그는 학생들을 선동하여 나치에 가입하라고 하였고, 전쟁이 끝나는 1945년까지 나치 당적을 유지하면서 줄기차게 나치 선전의 앞잡이 노릇을 하였다. 그가 1931년부터 1941년까지 쓴 글을 한데 모은 〈검은 노트〉(Schwarze Hefte)가 2014년에 출간되므로 친 나치 행적은 백일하에 모두 드러나게 되었다. 이 책에는 그가 연설한 원고와 나치 고위층과의 서신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하이데거는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 모두를 비판하면서, 오직 독일 민족주의를 앞세운 나치즘을 최고의 이데올로기로 칭송하고 추종하였다. 따라서 나치에 의해 자행된 반유대주의와 유대인 학살 등의 만행을 동조하고 지지하였다. 그는 스승 후설(Edmund Husserl)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대학 강단에서 퇴출당할 때 동조하였으며, 유대인 제자가 교수직 후보로 거론되자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전쟁 후 하이데거의 범죄를 다루는 유럽 정부의 태도와 그의 철학자로서의 공헌에 대한 유럽인들의 평가이다. 나치가 무너진 후 시작된 탈 나치화 작업을 통해 하이데거는 정직 처분만 받았다. 하이데거는 감옥에 간 적이 없다.
그의 감옥행을 막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치에 의해 피해를 당했던 프랑스 철학자들이었다. 프랑스 군정 사령관 피에르 펜느는 하이데거의 범죄에 대한 조사를 문학 교수였던 자크 라캉에게 맡겼다. 라캉은 하이데거의 범죄 사실을 밝혀내는 일에 게으름이 없었지만, 그의 철학자로서의 가치를 인정하며 감옥에 보내지 않았다. 5년 동안 학문 활동을 금지한 것이 전부였다.
한 인물에 대한 공과(功過)를 구분하여 평가하고 이해하는 것은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아주 중요하다. 유럽은 나치에 동조하고 협력했던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대부분 이렇게 평가하였다. 잘못에 대한 비판과 공적에 대한 평가 사이에 선을 긋고 역사를 바로 세웠다.
한국 사회에 친일 인사들에 대한 평가가 과오(過誤)에 집착하고 있다. 공과를 구분하지 않고 조금의 친일 행적만 보이면 모든 공적을 말살하고 지워버리려는 못된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친일파 청산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강남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