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나라의 보배요, 미래의 희망이다.’ 이 말은 곧 진리라 할 수 있다.
진리란 참된 가치를 지니었기에 영원히 변하지 아니할 이치(理致)요, 도리(道理)다. 나라의 흥망성쇠도 청년의 양어깨에 달려있다고 예부터 말해왔다. 특히 요즘은 청년의 지혜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기에 여야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 전체의 열화 같은 열망이다. 이것을 단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 이준석(36) ‘국민의힘’ 당대표다. 그는 국회의원을 한 번도 지낸 바 없는 젊은이지만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을 모두 제치고 당대표가 된 것은 무엇을 증명해 주고 있는가? 기성정치인들은 깊이 반성해 봐야 한다.
역사의 발전은 그 나라 청년의 능력에 달려있다. 그 능력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중요한 것은 투철한 사상이다. 사상이라고 하니 거창한 뜻을 지닌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올바른 생각’을 말함이다. 필자는 몇 차례 말했지만 사상은 자기 생각이 옳다고 느껴질 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옳다고 느껴진 그 생각을 위해 자기 목숨을 기꺼이 바치는 것이 곧 사상이다.
일찍이 함석헌(咸錫憲) 옹(翁)은 청년들을 가리켜 ‘나라의 씨알’이라 했다. 본래의 의미는 ‘곡식 종자의 낱알’을 가리켜 말함인데 함(咸) 옹이 말한 의미는 식물의 근본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엽록체를 말함이다. 이는 태양의 에너지를 받아 공기 중의 탄소와 뿌리로부터 빨아올린 수액과 결합하여 탄소동화 작용을 일으켜 탄소화물을 만들어 낸다. 이 탄소화물이 생명체를 이끌어 가는 3대 영양소인 단백질, 지질, 탄소화물을 만들어 낸다. 이것을 그는 씨알이라고 했다.
청년은 참으로 신선하다. 근·현대사만 보더라도 그렇다. 기성인들이 해내지 못했던 일들을 청년들은 과감히 해내었다. 3·1운동도 그렇고 4·19혁명, 60년대부터 7,80연대 민주화 운동도 그랬다. 이 외에도 청년의 힘은 거센 물결에 휩쓸려 왜곡되게 흐르는 역사를 바로잡았다.
그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1919년 삼일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좌절에 빠진 우리 민족은 절망에 젖어있었다. 다시 민족의식을 일으킬 수 없을까, 고민한 당시 25세의 청년 윤봉길은 결심했다. 그는 구학문과 신학문을 고루 갖춘 유망한 청년이었다. 때마침 1931년 중국 홍커우공원에서 전승기념 축제인 천(天)장(長)절(節)에 일본의 수뇌인 히로히토가 이곳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처단하는 길만이 우리의 독립정신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여겼다. 그는 폭탄을 준비했고 거사를 성공시켰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그들의 재판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 수뇌부 몇 사람을 죽였다고 하여 우리나라가 당장 독립이 된 것이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20년 혹은 30년 후에 연합군의 승리로 이루어질 때 애국애족의 정신이 살아 있는 우리나라를 반드시 독립된 나라로 이룩한다는 사실을 나는 확실히 믿기에 이 한목숨 조국을 위해 바치고자 한 일이다.”
이 한마디는 ‘사상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고 똑똑하게 웅변해주고 있다.
정치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요, 정책은 삶의 질과 제도를 제시하는 일이다. 정책을 세워 나라를 다스리려면 산통(産痛)과 같은 진통을 겪게 마련이다. 여기서 아기를 낳지 못하면 산모도 죽고 태아도 죽는다. 그러나 낳으면 한 생명이 탄생되므로 산모는 그 진통을 다 잊고 오직 기쁨만 있듯이 그 시대가 열리고 역사가 발전한다. 이 같은 산통의 과정이 곧 민주주의 원리다.
민주주의 원리는 함(咸) 옹(翁)이 말한 것처럼 근본 바탕이 건전해야 나무가 성장한다는 원리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근본 바탕을 이룩해야 나무가 성장한다는 논리다.
예를 들면 잎이 싱싱해야 탄소화물을 만들어 나무가 무성히 성장한다는 이치요, 공산주의는 나무가 존재해야만 잎을 피울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러니 존재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라야 하는가?
사람은 감각을 통해 사물을 감지하고 이성을 통해 추리하고 이해한다. 감각과 이성이 미숙하다면 사물을 착각하여 ‘신기루’를 ‘오아시스’로 여기기 쉽다. 우리 청년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차기 대통령으로 출마한 자들이 진정 나라를 위해 투철한 사상으로 무장된 자들인지를 꼼꼼히 살펴 가려내 달라는 일이다. 이 길이 대한민국을 반석에 올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 은퇴·수필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