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 “위대한 맥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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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해방 76주년이다. 새삼 6.25의 영웅 맥아더가 생각난다. “노병은 사라질 뿐이다.” 트루먼에 의해 보직이 해임된 맥아더 장군의 고별사 말미에 나오는 명언이다. 맥아더는 자기 주장이 뚜렷하다보니 케네디만 빼고는 역대 대통력과 늘 반목했다. 린든B.존슨과도 그랬다. 존슨이 베트남전을 확대하자 맥아더는 수시로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말렸다. “한국전은 소련의 스탈린이 북한을 부추겨 일어났지만 베트남전은 자기네들 끼리의 내전이다. 미국이 개입할 명분이 없다. 왜 우리 젊은이들이 아시아의 정글에서 속절없이 죽어가야 하나?” 존슨은 맥아더를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그래도 국가영웅 대접은 깍듯했다. 1964년 4월 5일 맥아더는 눈을 감았다. 보고를 받은 존슨은 즉각 애도 성명을 내고 7일 간 미 전국에 국장을 선포했다. 보직 해임 후 맥아더 부부는 뉴욕의 6성급 호텔인 월도프 아스토리아에서 살았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고국 땅을 밟았지만 맥아더는 허름한 집 한 채조차 없었다.

당시 아스토리아 호텔은 힐튼 가문 소유였다. 맥아더의 딱한 사정을 전해 들은 힐튼 가문이 선뜻 호텔 맨 꼭대기 펜트하우스를 내줬다. 방 값은 얼마나 됐을까. 공짜로 줄 수 없어 연 1달러만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맥아더 시신은 노년을 보내던 뉴욕으로 운구돼 국장 기간이 길어졌다. 뉴욕 군기지에 빈소가 마련돼 각국 유엔 주재 대사들을 비롯해 뉴욕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줄을 이었다. 이어 특별 열차가 투입돼 시신을 다시 워싱턴으로 옮겼다. 각국 의장대와 기수대 사관학교 생도대 등 수천의 병사들이 광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장엄한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시신이 안치된 의사당엔 그와 함께 싸웠던 옛 부하들과 시민 등 무려 15만 명의 조문 인파가 몰렸다. 시신은 다시 군 수송기에 실려 버지니아주 노퍽의 맥아더 기념관으로 운구됐다. 존슨 대통령은 이번에도 공항에 나와 맥아더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눴다. 생전에 그렇게 미워했지만 영웅에 대한 배려엔 한치의 소홀함이 없었다.

지금 이 나라는 한·미·중·일 갈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정치경제, 외교, 국방, 안보면에서도 나라를 믿고 나라에 충성하는 국민들 보다는 정쟁에 휘말리고들 있어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고 근심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내년 3월 9일 대선을 앞두고 얼치기 후보들이 여야 가릴 것 없이 다 나와 참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어디로 향할지 걱정된다. 작년 이맘때 6.25 민족 영웅 백선엽 장군이 작고했을 때의 일이다. 조문객 중 국가 지도자 급의 모습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반면 같은 시기에 성폭행 사건으로 자살한 박원순 서울시장(市葬) 빈소엔 조문객이 바글바글했다. 백선엽 장군이 적화 통일에 방해가 됐다고 판단한 이 정부는 장례 절차도 결국 국장, 국민장, 국방부장도 아닌 민간주도의 장으로 정했다. 장지도 동작동이 아닌 대전 현충원으로…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다행히 소설가 채학철 장로가 실명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하니 이 책이 구국의 영웅 앞에 온 국민의 이름으로 바쳐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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