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 되는 일 중 하나로 모두가 걷기를 권장하기에 나도 대세를 거스르기 싫어서 걷기 시작한 것이 어언 10년을 넘기면서 이제는 이 일이 나에게서 떼어버릴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매일 습관적으로 걷기를 계속 하니 몸이 가벼워지면서 건강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게다가 걷는 일이 일상이 되면서 머리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생각을 단순하게 정리하면서 글을 쓰는 일에도 큰 도움을 받기도 한다. 더욱이 코로나로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워지자 지루함을 견디는 묘약으로 여겼는데, 그 끝을 알 수 없는 불볕더위로 밖으로 나가는 일이 힘들어지면서, 편안하게 걷는 일이 못내 그리워졌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집 앞에는 내가 산책할 때 이용하는 개천이 있는데 그 개천 위로 지하철이 있어 자연스럽게 지붕 역할을 해 주어, 요즘같이 더울 때는 태양을 가려주고 비가 올 때는 우산이 없어도 되기에 커다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이렇게 그늘로 다녀도 더운데 뜨거운 태양을 직접 쪼이면서 농사를 짓거나 도로공사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어떻게 견디는지 걱정이 되곤 한다.
걷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이득을 준다.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기술이 요구되지도 않고, 더욱이 돈도 들지 않으며 아무 때고 시간이 날 때에 시작해서 필요한 때에 중지할 수가 있다. 이렇게 걸으면 몸도 튼튼해지고,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지면서 힘이 솟아오르는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그러기에 이렇게 걸을 때는 남과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혼자서 조용히 걷는 것이 좋으며, 또한 음악을 듣기보다는 자연을 보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보면서 걷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를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남과 경주하는 것이 아니기에 너무 무리해서 빨리 걷는 것도 피해야 하지만 너무 오래 걷는 것도 사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느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만사에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옛사람의 말인 과유불급(過猶不及)을 항상 상기할 수 있어야 겠다.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다시금 확인한 것으로 달리기 경주의 꽃은 100M 경기라 느껴진다. 그러면서 마라톤 경기를 보면서는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으니 마라톤은 다른 선수와의 경쟁이기 전에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여겨졌다. 누구와 다투거나 싸우지도 않고 묵묵히 앞을 보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로 걷기를 넘어 달리는 그 자세는 인생의 긴 여정을 자신의 숙명으로 여겨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라 여겨졌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걷든지 달리든지 혹은 자전거를 타든지 매일 밖으로 나와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이웃들을 보면서, 나도 그중의 한 사람으로 길을 걸으면서 그냥 소박한 노년의 꿈을 헤아려본다. 예전에 어떤 갑부가 노년에 몹쓸 병에 걸려 운신하기도 어려운 형편에 도달하자, ‘매일같이 사랑하는 강아지와 함께 뒷산을 산책할 수 있음이 가장 큰 소망’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것이 진심이라 여겨졌다. 노년에 편안하게 걸으면서 얻은 소득이라면 겉으로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내면이나 때로는 외면에서도 알기 어렵고 표현할 수는 없고, 비록 돈으로 살 수는 없어도 긍정적이고 편안한 변화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생기는 것이 정녕 나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라고 여길 수 있겠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