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본 삶의 현장] 대단위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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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 학교에서 시도하려 했던 것은 대단위학습이었다. 교수 방법이 뛰어난 교사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필요한 교편물을 준비하여 대단위 수업을 하고 토론이 필요하거나 개별 지도가 필요한 내용은 소단위로 지도하면 훨씬 능률적이라는 이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것은 연세대의 오 교수에 의해서 고무된 방법이었는데 여러 고등학교에 호소해 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오 교수는 이 학교의 크기가 대단위학습을 실험하기는 가장 알맞으며, 교사들이 연구심이 높고 의욕적이기 때문에 성공할 확률이 크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교장의 구미를 당기게 한 것은, 만일, 이 대단위 수업을 시도하고 함께 계획을 세워 협력하면 백만 원 정도의 연구비를 지원하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때 우리들의 평균 봉급은 만 오천 원이었기 때문에 백만 원의 연구비는 큰돈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에도 대부분 선생이 반대하였다. 그렇게 좋은 계획이면 다른 학교에서 왜 안 했겠느냐는 것이었다. 모든 학교가 외면한 대단위 수업을 왜 우리 학교만 찬성하여 모험하며 실험대에 오르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고정관념은 과감히 깨뜨리고 도전해야 학교가 발전한다. 설명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앵무새처럼 분필과 입만 가지고 똑같은 내용을 여러 교실을 다니며 같은 말로 가르치고 다닐 것이 무엇인가? 한 교실에 많은 학생을 집어넣고 충분히 준비한 교편물로 능력 있는 교사가 한번 잘 지도하면 될 것이 아닌가? 라고 설득하였다. 

이 방법에는 또 진학지도가 문제가 되었다. 전 교과과정을 고2까지는 다 떼고 고3 때는 입시 준비 수업만 해야 하는데 도대체 대단위 수업이니 뭐니 한가한 미국 교육 흉내나 내고 있을 때냐는 이야기였다. 결국, 진학과 아무 상관이 없는 성경 과목에 이를 적용하기로 하였다. 이 결정에는 교목들이 불같이 화를 냈다. 기독교 학교에서 성경 과목이 도대체 교육 방법 개선의 이용물이 될 수 있느냐는 반론이었다.

기독교 학교일수록 성경 과목을 더 잘 가르치도록 연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성경은 전 학년이 배우기 때문에 대단위학습을 시도하기에 가장 알맞고 채플로 쓰는 대 강당이 강의실로도 가장 적합하다. 또 성경 교재는 이 학교 학생들의 특성에 맞도록 개발된 것이 아니므로 다년간 이 학교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을 토대로 교목들이 교재를 재개발하여, 한 시간 단위로 수업하기 쉽게 재구성하면 훨씬 특성 있는 수업을 할 수 있다. 이렇게 개발된 교재의 내용에 맞는 삽화를 구해서 잘 배열하여 환등기로 대단위 수업을 하되 그 내용의 설명은 성우들을 시켜서 하기로 한다. 30분 슬라이드 수업, 10분 토론 그리고 10분 퀴즈 이런 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면 학생들의 성취도는 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에 필요한 모든 경비는 교비와 연구비를 반반으로 내어 부담한다. 이런 내용이었다. 이것은 나에게 퍽 신선하고 매력적인 교육개혁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성경 과목은 세속 학문과 차원이 다르며 특히 이를 실험도구로 쓰려는 발상은 창학이념에도 어긋난다며 이런 처사는 이사회에서 먼저 논의되어야 할 일이라고 격분하였다. 

교목실의 권위, 교회의 권위, 성직자의 권위 등은 견딜 수 없는 갈등을 가져왔다. 나는 교목은 목사이면서 동시에 교사이기 때문에 교사로서 성경 공부를 가르칠 때는 다른 평교사와 마찬가지로 지도안까지도 시간마다 써야 하고 연구부에 제출하여 결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과목은 가르칠 때 시간마다 목표가 있고 가르칠 내용이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교육 방법은 지도안으로 객관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목사는 평교사에게 결재를 받을 수 없다는 권위 문제였다. 예수님이 천국을 전파하면서 자기의 권위를 주장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내가 이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이 대단위 수업 계획은 실천되지 못하였다. 나는 이런 일로 기독교인으로 많은 갈등을 느꼈다.

오승재 장로 

•소설가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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