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하나님 경외 (Fear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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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창세기 22장을 ‘아케다’(Akedah)라고 부른다. ‘아케다’란 히브리어로 ‘묶는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묶어서’ 제물로 바치려 했던 것에 유래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묶어 제물로 바치려는 순간,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지금)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사랑하는 아들 이삭까지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는 말씀이다. 이 단락에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이 구약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아브라함 이후로 성경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수많은 사람이 등장했다. 애굽에서 총리가 된 요셉은 자신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했고 (창 42:18), 히브리 두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애굽왕의 명령을 어기고 이스라엘 남자 아기들을 살려주었다.(출 1:17, 21) 구약성경에서 ‘하나님(또는 여호와)을 경외’한다는 어구가 160회 이상 나오고 있으며, 20세기가 낳은 구약학의 대가 폰 라트(Von Rad)는 ‘하나님 경외’는 구약의 핵심되는 신학적 주제 중의 하나라고 역설했다. 특히 구약의 지혜문학(잠언, 욥기, 전도서)에 있어서 ‘하나님 경외’는 가장 중요한 중심 주제가 되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대전제로 시작되는 잠언에는 ‘하나님(여호와) 경외’라는 경구가 16번이나 나오고 있고, 욥기에서 ‘지혜의 장’이라고 불리는 28장은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는 말로 결론 맺고 있다.

전도서는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유명한 어구로 시작하여 11장은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래서 전도서는 모든 인생사가 다 헛되다는 ‘허무주의’를 전하는 책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전도서의 최종 결론은 마지막 12장의 마지막 절이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인가? 히브리어로 이 말은 축자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Fear of God)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피조물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두렵고 떨리는 존재이다. 그래서 신명기는 하나님의 존재에 관해서 이렇게 말씀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크고(=위대하고) 능하시며 두려우신(fearful) 하나님이시라.”(신 10:17, 또한 7:21)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두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느끼는 긴장감, 위압감, 경외심은 당연한 인간의 심리이다. 이러한 심리적 차원의 ‘두렵고 떨림’(fear and trembling)은 ‘하나님 경외’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시편의 말씀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trembling) 즐거워할지어다.”(시 2:11)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이러한 심리적 차원을 넘어서서 그 이상의 또다른 의미가 있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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