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최장수 총리 앙겔라 메르켈의 아름다운 퇴장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그녀는 총리가 되기 이전부터 살던 아파트에 살면서 16년 동안 국가의 수반으로서의 활동하였고, 이제 9월에 총리직에서 물러나면 변함없이 그 집에서 죽을 때까지 남편과 둘이 살게 될 것이다.
일본의 아베 전 총리는 도쿄의 크지 않은 3층 건물 집에서 산다. 1층은 아베 전 총리의 부인이 사용하고, 2층은 아베 전 총리가 쓰고, 3층은 아베의 모친이 기거한다. 스웨덴의 엘란테르 전 총리는 재임 중에 집 없이 임대 주택에 살았다. 퇴임 후 집 없는 그에게 어떤 국민이 시골 별장을 하나 지어서 선물하였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개인 재산으로 장만한 사저가 있지만, 퇴임 후에 국가 예산으로 집을 새로 짓거나 증축이나 보수를 하지 않는다. 자신의 집 때문에 국민에게 폐를 끼치거나 세금을 축내는 일은 없다. 영국의 총리들은 퇴임 후에 차량과 기사를 제공받지만, 비서에 대한 지원은 없다. 경호를 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총리들이 이를 거절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국민의 한 사람이 되어 평범한 아파트에 사는 경우가 없다. 모두가 대궐같은 사저로 들어가거나 경호를 핑계로 크게 지어 국민과의 위화감을 조성한 채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잡음과 막대한 예산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혈세를 낭비한다.
그렇게 재임 전부터 퇴임 때까지 국민을 위한 대통령, 서민 대통령을 자처해 놓고서도 끝내 국민의 눈높이에서 벗어난 귀족의 저택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은 물러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평범한 시민으로 이웃과 만나고 대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주의 성과 같은 사저에 들어앉아 계속 자신의 정치 세력과 만나고 존재감을 과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즉 한 번 대통령은 영원한 대통령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우리나라에는 어느 자리든지 오르면 모두 귀족 대우를 받는다. 자기 집을 놔두고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도지사, 군 장성 할 것 없이 모두 관사나 관저에 들어가 살면서, 여러 비서와 시중드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귀족 대우를 받는다. 그러니 자신이야말로 국민의 공복(公僕)이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게 된다. 선진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후진성이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강남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