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쉼터] 정의로운 시민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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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 낮 시간이기에 그리 붐비지 않고 여기저기 빈자리도 눈에 띄었는데, 어떤 젊은 연인이 있었다. 그들은 그곳이 전철이라는 공공장소인 것을 잊었는지 혹은 남의 시선은 별로 개의치 않는 사고방식을 지녔는지, 서로 끌어안고 민망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나도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어찌할 수 없이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어떤 노인이 그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아니 이런 공공자리에서 이 무슨 해괴한 짓이냐, 썩 그만두지 못할까”하고 소리쳤다. 순간적으로 전철 안은 긴장이 감돌았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군데로 집중이 되었다. 나도 ‘대단한 영감님이시군’ 하면서 그들을 살펴보았는데 젊은이들은 재수 없이 잘못 걸렸다는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째려보다가 구시렁거리면서 전철에서 내려버렸다. 순간적으로 그 상황은 특별한 말썽 없이 잘 마무리되어 다행스럽게 여겨졌으나, 요즘에는 이런 일에 잘못 개입했다가는 쌍소리를 듣는 경우도 생기고 때로는 지하철 계단에서 밀쳐 밑으로 떨어뜨리는 일도 일어나게 된다. 그러기에 예전에는 누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 충고나 훈계를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남의 일에는 되도록 모르쇠로 일관하는 풍토가 되어버렸다. 심지어는 동네를 다니다가 골목길에서 덩치만 컸지 분명히 학생인 아이들이 모여 담배라도 필 때에 그 앞을 지나면서도 「그냥 못 본 척하며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그냥 세상이 많이 변했다거나, 어쩌려고 이렇게 세상이 망조가 들었냐고 한탄만 할 뿐이다. 그렇지만 이런 부조리를 보고도 못 본 척하며 적당히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슬그머니 부끄러워질 뿐이다.

예전에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인들의 철저한 고발 정신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14살 미만의 자녀들만 집에 두고 어른들이 외출할 수 없는 규정」이 있지만 이에 익숙하지 않아 애들만 두고 집을 나섰던 한인 부부가, 이웃의 신고를 받고 찾아온 순경에게 곤혹을 치르는 광경을 목도하기도 했다. 이렇게 원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지만 불의에 맞서서 투쟁할 때에는 비록 자신에게 피해가 있더라도 대의를 위해 불의에 저항하는 태도를 보면서 「이런 정신이야말로 정의로운 시민의 자세」라고 여겼다.

한 주일에 두 번 정도는 집안의 쓰레기들을 쓰레기장으로 들고 가서 버리곤 한다. 물론 규정대로 분리수거를 해야 하기에 쓰레기를 버리기 전에 내 나름대로 열심히 규정을 따른다. 요즘엔 플라스틱이나 비닐 같은 폐기물은 거기에 붙은 종이를 모두 제거해야 하는 등 규제가 많다 또한 배달제품이 많아지면서 여기에 붙은 주소는 모두 제거해서 버리라고 관리 사무실에서 당부하고 있다. 이제는 집에서 쉬면서 노후를 보내는 나는 시간이 많아 이런 규정을 열심히 따라 그대로 실천하는 형편이다. 그래도 매일매일 새로 버려지는 쓰레기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이를 버리는 아파트 주민들 중 많은 사람들이 준수사항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그냥 갖다버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쓰레기장에서 만나는 주민들도 내 눈에 띄게 규정을 어기면서 막무가내로 버리는 경우를 거의 매번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고 규정대로 손질을 해서 버리라고 그들에게 잔소리할 수도 없으니, 이는 자칫 잘못하면 말싸움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자주 얼굴을 맞댈 수 있는 이웃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시민의 자세를 지니는 이웃이기를 바랄 뿐이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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