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30여 년 동안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을 통해 출퇴근하면서 역부근 뒷골목 풍경을 익숙하게 보아왔다. 역에서 학교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고, 가끔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동네 식당을 이용하기도 하면서 고향마을과 같이 푸근함을 느끼는 장소가 되었다.
그런데 2년전 정년퇴임 후 낙성대역 부근의 사무실로 출퇴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동네 골목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매일 경이로운 눈으로 관찰하는 중이다. 아마 서울 동네 곳곳의 사정이 비슷할 것으로 생각되기에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필자는 오전 일을 마친 후 12시경에 동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부근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신 후 한 시간 정도 동네 산책에 나서는 것이 매일의 일과가 되었다. 이렇게 일상을 지내다 보니 전에서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인근의 공원이다. 식사 후 10여 분만 걸으면 낙성대공원에 도착한다. 깨끗하고 잘 정돈된 공원도 우리에게 좋은 휴식처를 제공하지만, 공원에 바로 이어서 울창한 숲속으로 난 관악산 등산로가 일품이다. 도심 한가운데 이런 울창한 숲이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난다. 커피 한 잔 들고 공원을 산책하거나 등산로를 따라 깊은 산속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킬 수 있으니 이런 호사가 없다.
마음이 내키면 인헌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다. 평일 낮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시장의 풍경은 괜시리 마음을 들뜨게 한다. 시장골목 안에 있는 각종의 가게를 기웃거리면서 느릿하게 산책하는 것도 묘미 중에 하나다.
역시 가장 큰 변화의 중심은 샤로수길이다. 샤로수길은 작은 식당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길로 서울대 마크를 의미하는 샤와 가로수길을 합성해서 만든 이름으로 관악구에서 공식으로 명명한 식당 골목이다. 이 샤로수길에는 독특한 메뉴와 예쁜 실내장식을 한 작은 식당과 카페들이 즐비하다. 우선 이 식당들은 소규모이고 소박하지만 깔끔하다. 무엇보다 젊은 청년들이 운영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최근에 아주 아담한 카페가 새로 개장을 했는데 앳돼 보이는 두 남녀가 운영을 하고 깔끔한 인테리어에 제법 독특한 로고와 철학이 담긴 이름이 멋스러운데 벌써 비슷한 또래의 젊은 고객들로 북적인다. 이런 개성있는 작은 카페는 스타벅스와 같이 대기업이 운영하는 카페와 경쟁할 필요가 없이 자기 자리를 잡아갈 듯하다.
아직은 옛날 식당들이 드문드문 있기는 하지만 빠르게 새로운 형태의 식당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이 새로운 식당과 카페에서 필자는 희망을 본다. 식당과 카페 하나하나가 독특한 메뉴와 개성있는 실내장식을 뽐낸다. 어떤 카페는 전통적인 떡을 케이크로 만들어 내어 놓는다. 일본 라면집, 대만식 국수집이 있는가 하면, 제주도식 돼지국밥집도 있고 수제 햄버거집도 있다. 모두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메뉴들이다.
유럽의 시골이나 소도시에서나 보았던 개성있는 작은 상점과 식당들을 어느새 우리나라 골목에서도 만나게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빠르다. 우리의 정서가 따라가지 못할 만큼 변화는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골목의 생활환경이 놀라울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다. 거창한 이념이나 사회발전에 따른 변화보다는 이러한 작은 골목의 변화가 우리 삶의 질을 높이고 일상의 행복을 더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김완진 장로
• 서울대 명예교수
• 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