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박완서-박경리, 두 할머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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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 북극곰이 있다면 남극엔 펭귄이 있습니다. 펭귄들의 고향 남극은 북극보다 더 추운영하 40도에다 사람도 넘어뜨리는 블리자드(blizzard=눈폭풍)가 있습니다. 온 천지가 눈으로 덮여 있어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빼곡한 털과 두터운 지방층을 가진 펭귄도 살아남기 힘든 곳입니다. 

북극곰이 겨울을 이기는 방법은 겨울잠이고 남극의 펭귄이 겨울을 이겨내는 방법은 함께 모여 서로를 끌어안는 “포옹(huggling)작전”입니다. 원형으로 모여 서로를 안아주며 체온을 유지합니다. 우리 민속무용 ‘강강수월래’처럼 수많은 펭귄들이 몸을 맞대고 회전하여 원을 그리며 안에 있던 펭귄이 조금씩 밖으로 나가고 밖에 있던 펭귄은 안으로 조금씩 들어옵니다. 그렇게 하여 남극의 모진 겨울을 이겨 냅니다. 남극만 살기 힘들까요?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발걸음 닫는 곳이 모두 남극처럼 춥고 어둡습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여전히 외롭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리움과 외로움은 짝꿍처럼 붙어 다닙니다. 

그리움과 외로움 속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까요? 펭귄의 “안아주기 작전”이 필요합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를 측은히 여기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서로를 안아주어야 합니다. 창조주께서는 혼자서 외롭게 사는 아담을 위해 함께 있을 짝, 이브를 보내주셨습니다. 너의 추위와 나의 추위가 만나면 “용기”가 생겨납니다. 너의 상처와 나의 상처가 만나면 “치유”가 일어납니다. 너의 외로움과 나의 외로움이 만나면 “우리”라는 공간이 생깁니다. 걱정은 작아지고 어두웠던 마음에 봄 아지랑이가 피어오릅니다. 

2011년 우리 곁을 떠난 소설가 박완서(朴婉緖, 1931~2011)님은 1988년 5월에 남편과 사별하고 8월에는 스물여섯 살 아들을 잃었습니다.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던 외아들이었습니다. 딸을 내리 넷을 낳고 어렵사리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이 죽자, 그녀는 절망했습니다. 참담한 심정으로 모든 문예 활동을 끊었습니다. 삶 자체를 끊고 싶었습니다. 물도 음식도 숨 쉬는 것 자체가 싫었습니다. 스스로 미치지 않는 것이 저주스러웠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사람들은 이런 위로의 말을 전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게 돼!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 하고 또 웃고 살게 돼!” 그러자 박완서는 절규했습니다. “나는 그게 무섭단 말이야. 생때같은 아들을 잊게 된다는 게 그게 무섭단 말이야!” 두문불출하며 스스로를 폐쇄시키고 슬픔에 잠겨 있던 그녀에게 누군가 “원주에 계신 박경리(朴景利, 1926~2008) 선생 댁에 가시지 않겠어요?”하고 권했습니다. 의외로 순순이 따라 나서서 원주에 도착한 그녀에게 밭을 매고 있던 박경리 선생은 흑발로 뛰어나와 그녀를 맞아 마루에 앉히고는 서둘러 따스한 밥을 짓고 배추국을 끓여 그녀에게 권했습니다. 고개를 돌리며 음식을 거부하는 박완서에게 박경리 선생은 우격다짐으로 음식을 떠먹였습니다. “먹어야 살고 살아야 글을 쓰고 글을 써야 치유가 된다. 그래야 네가 살고 네 글을 읽는 아들 잃은 이 땅의 많은 어미들이 산다. 네 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마라. 어여 먹어!”

6.25 전쟁 중에 남편과 국민학생 아들마저 잃었던 박경리 선생을 잘 알고 있는 박완서씨는 이심전심으로 눈물을 흘리며 밥술을 받아먹습니다. 밥을 눈물과 콧물과 국물을 함께 넘기며 박완서와 박경리 두 여인은 남편과 아들을 잃은 아픔이 공유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다섯 살 연상의 박경리 선생은 박완서에게 친정엄마가 되었습니다. 다음은 박경리 선생의 장례식 때, 의붓딸 박완서의 조사(弔辭)입니다. “죽을 만큼 힘들었을 때 눈물범벅으로 따순밥과 배추국을 아귀아귀 먹여 주신 당신은 저의 친정 어머니였습니다.” 어떠한 위로도 마다하던 박완서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었던 것은 박경리 선생의 상처였습니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가슴 아픈 상처”였습니다. 두 여인의 상처는 마침내 그녀들의 작품을 통해 상처 입은 많은 어미들을 보듬는 최고의 위로제, 치료제, 항생제가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힘드시지요? 나의 힘겨움과 부족함은 함께 살아가는 상처 입은 이웃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입장권(入場券)”입니다. 당신의 힘겨움은 가족과 이웃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치료제”가 됩니다. 기운을 내십시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드라마 《다모(茶母)》에 나오는 명대사(名臺詞)는 우리가 지금 기억해야 할 말이기도 합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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