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종교 개혁의 시대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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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을 분석한 시도는 많다. 어떤 이는 루터 개인의 심리적 기재를 통해 분석한다. 에릭 에릭슨의 Young Man Luther가 대표적이다. 자아 심리학을 사용한 에릭슨은 젊은 루터가 가진 자아 분열적 반항심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 종교개혁을 성공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또 어떤 이는 루터보다 먼저 개혁의 기치를 든 존 위클리프나 얀 후스와 달리 루터가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루터가 내건 95개조 항의문은 당시 인쇄업자들에 의해 인쇄되어 삽시간에 유럽에 퍼질 수 있었다. 사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로마 교회의 면죄부 인쇄에 널리 사용되었다. 그래서 많은 소수의 인쇄소가 유럽 곳곳에 있었다. 이들이 이제는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인쇄하여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루터의 개혁 성공의 배경은 당시 부패한 로마 교회의 사제들이었다. 이들은 성직을 돈으로 사고 팔았다. 따라서 자격 없는 사제들이 곳곳에서 물의를 일으켰다. 어떤 사제는 라틴어를 제대로 몰라 예전 집례 도중 엉터리 라틴어로 인해 당시 지식인들에게 조롱을 받기까지 했다. 이들을 지도하고 감독해야 할 로마 교황청이 부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교황이 둘이나 되어 서로 물고 뜯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그러니 당시 사제들의 무능과 부패는 일반 대중들에게 조롱과 멸시거리가 되었다. 불행히 아무도 이를 바로잡을 수 없었다. 당시 교황은 값비싼 미술품이나 고급건축 등 많은 재정이 들어가는 사치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를 위한 재정은 면죄부를 팔아 조달했다. 당연히 유럽 각국의 제후들도 교황청에 불만을 가졌다. 이 시기에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나왔다. 피라미드식으로 된 교회 조직 꼭대기에서 맨 아래까지 전체가 부패하고 무능했다. 그런데 이들 사제를 통제할 길이 없었다.

오늘 한국교회는 어떤가? 한국교회의 교역자들이 일반인들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나아가 인문학적 소양을 갖고 있다고 보는가? 목회자들의 생활 수준이나 삶의 양식이 과연 부름 받은종의 모습인가? 현재 한국 교계의 가장 큰 문제는 목회자들을 통제할 길이 없다는 데 있다. 과거 한국기독교총연맹(한기총)에 소속된 교단 신학교라 선전하는 엉터리 신학교들이 지역교계신문 광고란을 가득 채운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들 무인가 신학교는 한기총 가입교단의 인준 받은 신학교라고 선전하며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여기서 배출된 목회자들이 수준 높은 일반 시민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을까? 지금 주요 일간지에 오르내리는 목회자들에게 보내는 젊은 세대의 눈총은 차갑기만 하다. 그런데도 엉터리 목회자들이 온갖 부정과 비리를 일삼아도 이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종교개혁의 기치는 프로테스트(Protest) 즉 저항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개신교 즉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교회는 여기서 유래한다. 무엇에 저항한다는 것일까? 기존 질서 중 잘못된 것에 저항한다.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의 지위에 올리는 것에 저항한다. 인간적인 것을 신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에 저항한다. 자신의 잘못에 저항한다. 자기비판 정신! 이것이 종교개혁의 시대적 정신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 즉 프로테스트 하는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신의 잘못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이에 저항해야 한다. 오늘 한국 교계에 먹칠하는 수준 이하의 목회자들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개혁을 가장한 다른 세력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아니 벌써 이단들 가운데 기성교회 공격을 제2의 종교개혁으로 포장하는 집단도 있다. 종교개혁 기념 주간에 맞는 등골 서늘한 현실이다. 교회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될 또 하나의 현실적 이유다.

구춘서 목사

<전 한일장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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