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학자요 문신(文臣)인 조명리(趙明履, 1697~1756)의 고시조 한 수가 떠오릅니다. “설악산 가는 길에 개골산 중을 만나/ 중더러 묻는 말이 단풍이 어떻더냐/ 요사이 연(連)하여 서리 치니 때맞았다 하더라.” 이 시는 ‘금강산의 가을 경치’를 문답형식으로 표현한 시조인데 이 시를 쉽게 풀어봅니다. “설악산 가는 길에 때마침 금강산에서 내려오는 중 한 사람을 만나 ‘금강산의 가을경치가 어떠하뇨’하고 물어보니 요즈음 계속해서 서리가 내리니 때가 알맞은가 하오.”
지금 때가 아주 짙은 가을입니다. 여러분의 나이는 어디까지 왔습니까? 인생의 가을은 천천히 가지 않습니다. 20대, 30대까지는 굉장히 더디 갑니다. 음악의 용어로 이야기 하자면 ‘아다지오(adagio: 느린 속도로)’같은 세월입니다. 그러다가 40이 되면 달라집니다. 어떻게 달라지는가? 템포가 얼마나 빨라지는지 아세요? 내가 느낀 대로 한 마디 가르쳐드릴 게요. 마흔 그러면 그때부터 마흔, 마흔 하나, 마흔 둘! 이렇게는 안 갑니다. 잘 들어 두세요. 마흔, 마흔하나-둘-셋-넷… 이렇게 해서 50이 되는 게 인생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렇게 빨라요. 템포가 아주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50과 60사이는 어떻습니까? 50에서 하나 건너뛰면 60입니다. 50, 55, 60입니다. 50, 51, 52, 53… 이런 게 없습니다. 56, 57… 이런 것도 없습니다. 또 나는 60, 70사이도 살아보았는데 거기엔 65도 없었습니다. 60에서 70으로 직행하는 겁니다. “나는 아직도 멀었어!”라고 철없는 소리만하는 젊은이들 반성하세요. 그런 날이 얼른 다가오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날이 빨리 옵니다. 그런데 70이 되니까요. 70하고 80이 붙어있어요. 80이 넘으니까요, 눈만 깜빡하면 하루씩 가요. 눈 한 번 깜빡이는 것을 ‘일순(一瞬)’이라고 하지요? 내 나이도 예전에는 이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 아흔이 넘었어요. 눈 몇 번 껌벅껌벅하니 아흔이 넘었습니다. 인생이란 게 그렇다는 걸 깨닫고 이 가을에 여러분의 인생도 깨닫기 바랍니다. 빠르게 세월은 흘러가는데 무엇을 남기고 갈까요? 남기고 갈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걸 깨달아야 합니다. 그걸 깨닫는 것이 인생입니다.
위에서 김동길 교수께서 주신 말씀은 비단 젊은이들에게 국한된 조언이 아니요, 장년이나 노년에게도 교훈이 되는 메시지라 하겠습니다. 시편 90편 10절~12절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본문 시편은 우리 인생에게 귀중한 교훈 몇 가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알려주는 것은 인생은 보통 칠십을 살고, 잘 살면 팔십을 산다는 사실입니다. 원래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조상들은 900살 이상을 살았습니다.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인류의 조상들은 대부분 800살에서 900살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짓고 나서부터 인생의 나이는 점점 짧아져 대홍수 이후에는 나이가 120세로 짧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나이는 점점 더 짧아져서 시편(詩篇)에 이르러서는 보통 70세를 살고 조금 더 살면 80세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 알려주는 교훈은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 하였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오래 살았다는 자랑도 헛된 것이라 말합니다. 요즘 80세 정도로는 장수했다고 명함을 내밀지 못합니다. 90을 넘어 살았다고 해도 자랑할 만큼은 아닙니다. 주변에 90을 넘어 산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알려 주는 메시지는 “인생은 날아가듯이 가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찬송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 나고/ 사망의 그늘이 너와 내 앞에 둘리며 가리우네.” 인생은 활시위를 당겨 쏜 화살과 같이 빨리 지나간다는 말입니다. 날아가듯 가는, 한 번 뿐인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김동길 교수께서 젊은이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충고의 핵심을 한 줄로 요약하면 “짧은 인생을 허송하지 말고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identity)’을 지니고 살아가라”는 교훈이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