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의 생활신앙] 11월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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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김장을 하고 초가지붕을 새로 이으며 월동용 땔감(장작)을 저장해야 하는 달이다. 절기로는 입동(立冬)과 소설(小雪)이 들어 있고 각 교회에서는 추수감사절 감사 예배를 드리는 달이다. 본격적인 겨울이 되기 직전이다. 어떤 면에서는 가장 어설프기도 한 때이다. 

그러나 어느 계절, 어느 달에도 삶은 지속되어야 하고, 시는 있어야 한다. 도연명의 시가 생각난다. “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청년의 시기는 두 번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도 두 번 오지 않는다. 따라서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① “천 번을 접은 가슴 물소리 깊어도, 바람 소리 깃드는 밤이면, 홀로 선 마음이 서글퍼라/청춘의 가을은 붉기만 하더니, 중년의 가을은 낙엽 지는 소리, 옛 가을 이젯 가을 다를 바 없고, 사람 늙어감에 고금이 같거늘, 나는 왜 길도 없이. 빈 들녘 바람처럼 서 있는가/모든 것이 그러하듯, 영원한 내 소유가 어디 있을까, 저 나무를 보라, 가만가만 유전을 전해주는, 저 낙엽을 보라/그러나 어느 한순간도, 어느 한 사람도, 살아감에 무의미한 것은 없으리, 다만 더 낮아져야 함을 알뿐이다”(이채/11월에 꿈꾸는 사랑). ② “무어라고 미처/이름을 붙이기도 전에/종교의 계절은 오고야 말았습니다//사람은 차라리/달디단 살과 즙의 가을 열매가 아니라//한 마디에 자지러지고 마는/단풍잎이었습니다//두 눈에는 강물이 길을 열고/영혼의 심리에도/촉수가 높아졌습니다//종교의 계절은 깊어만 갑니다/그대 나에게/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유안진/11월). ③ “아무도 없어서는 안 된다. 서 있는 것들은 저마다 빈 나무로 서 있고, 나도 그들과 함께 서서, 오래오래 묵은 소리로, 우수수 우수수 몰려가는, 이 세상의 여호와여, 낙엽이여, 내가 서서 빈 나무 되어도. 나무는 나무끼리. 더이상 가깝지 않게, 나무 사이의 어린 나무에게, 흐른 하늘을 떼어준다. 바람 속에서 바람도 몸임을 알아라. 바람으로 태어나. 내 아들로, 여호와로, 이 황량한 곳을 살게 하누나. 아무도 없어서는 안 된다. 빈 나무끼리 서서. 너희들 없이. 어찌 이 세상 벽청(碧靑)으로 녹이 슬겠느냐. 핀 잎새 제 뿌리 위를 덮고, 사람들도, 설움도 그 일부는 덮었구나”(고은/11월). ④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돌아보면 다들 떠나갔구나/제 있을 꽃자리, 제 있을 잎자리/빈 들을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상강(霜降) – 서릿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꽃은 꽃끼리, 잎은 잎끼리/맨땅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시대를 통곡한다/시들어 썩기보다, 말라 부서지기를 택하는 그의 인동(忍冬)/갈대는 목숨들이 가장 낮은 땅을 찾아, 몸을 눕힐 때/오히려 하늘을 향해 선다/해를 받든다”(오세영/11월). ⑤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아, 이생이 마구 가렵다/주민등록 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환등기에서 나온 것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앞에서/이승 쪽으로 촉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나이를 생각하면/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11월의 나무는/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나는 등 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한다”(황지우/11월의 나무). ⑥ “문득 떠나는가//텅 빈 하늘이래. 추레한 인내만이/수두룩한데/가랑잎 더미에, 시름을 떠넘기고//굼뜬 나를 버려둔 채/황급히 떠나야만 하는가”(임영중/11월의 시)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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