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4:1-11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7)
욥의 친구 대만 사람 엘리바스가 욥이 당한 상황을 지켜보고 이는 분명 하나님이 행한 대로 갚으시는 죗값이라 정의한 말입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처럼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은 성경에도 있으며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은 한 가지 이유만이 아니라, 자연적인 재난과 악한 세상으로 의인이 핍박을 받으며 신앙 때문에 핍박과 순교에까지 이르는 일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마 5:10-12) 특별히 욥기에 등장한 사탄이란 영의 존재가(사 14:12-20, 슥3:1-2) 하나님을 공격하며 인간을 유혹과 현혹하며 때로는 예수님이 당한 것처럼 고난과 치열한 영적 전쟁이 있다는 것을(마 4:1-2) 성경은 말씀하고 있음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극한 영적 전쟁판이 이 세상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엡 6:11, 벧전 5:8) 이렇게 복잡한 인간사 세상을 단편적인 지식과 편협한 경험에 의한 자기 저울로 세상 모든 것을, 특별히 신비한 영의 세계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왜곡되고 무서운 것인지를 보게 하십니다. 왜곡된 이해와 편견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며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요. 주의 말씀으로 충고와 위로한다는 것이 도리어 큰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생각하게 하십니다. 욥의 신앙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허락으로 사탄의 시험을 받고 있지만, 욥도 인간인지라 극한 고난에 대한 탄식을 쏟아놓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욥의 신앙은 더 성숙하고 견고해지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요셉과 모세와 다윗을 보면서도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기 백성에게 이렇게 가혹한 시험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과 탁월한 지혜와 지식으로 남을 가르치는 자가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남을 훈계하고 약한 자를 위로하던 자가 훈계와 위로를 받아야 하고 넘어진 자를 세워 주고 힘이 없는 자에게 힘을 주는 자가 넘어지고 생명 다해 모았던 것이 한순간에 다 흩어질 때가 있다는 것을(3-5)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치 동물의 왕 사자처럼 포효하는 힘이 없어지고 먹이 사냥에 탁월한 이빨도 부러지고 거느린 암사자들을 통해 얻은 수많은 새끼도 감당 못 해 모두 흩어지는 날이 올 것이란 엘리바스의 말이지만(10-11) 그래서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우는 마음으로 한없이 겸손해야 함을 깨우치고 있지만 엘리바스가 자기 해박한 지식과 편견으로 위로하고 깨우치려는 훈계가 욥에게는 통하지 않았음을 보게 합니다. 도리어 더 깊은 상처와 힘들게 하는 모순을 보게 하십니다. 인간은 지식과 자기 경험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답이 없는 불안한 세상에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야 함을 깨닫게 하십니다.
상황이 꼬이고 삶이 힘들어지고 중요한 인간관계가 깨어짐으로 고통스러워질 때 문제와 자책하는 감정에 휩쓸리기 쉬워질 때, 내 탓으로 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탄의 공격과 영적 전쟁이라는 것에 대적하는 담대함도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감성보다는 뱀 같이 지혜로움이 더 필요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함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주님! 편견이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교리와 신학적인 무서운 고정관념이 때로는 나의 작은 지식과 경험이 편견이 되어 나와 이웃을 죽이는 일이 없게 하소서. 그동안 어려움 당한 이웃과 성도들에게 위로와 충고한다고 너무 쉽게 답을 제시하려 했던 것들이 생각됩니다. 짧은 지식과 편견을 가지고 탁월한 상담자인 양 목양자의 길을 걸어온 것이 부끄럽습니다. 말씀 앞에 더 신중하고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는 일에 집중하게 하소서.
김유수 목사
<광주 월광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