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하늘은 어찌 주유를 세상에 내고 또 제갈량을 냈단 말인가?” 이것은 삼국지의 오나라 대도독 주유가 제갈량의 꾀임에 빠져 죽으면서 한 마지막 말이다. 그의 나이 겨우 36세였다. 오나라의 최고 명장 주유는 이렇게 패전 장수가 되어 전장에서 비참하게 숨을 거두었다. 주유에 비하면 제갈량은 승자였고, 서로 라이벌이었으니 원수가 죽은 것이다.
사실 적벽대전을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 주유는 제갈량을 몇 번이고 죽이려고 하였다. 그런 주유가 죽었다. 그것도 비참하게 패자로 전쟁터에서 사망하였으니 속으로 박수를 칠 일이고, 그의 고약한 행동을 생각하면 시체를 발길질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주유의 장례식에 가느냐 마느냐의 결정이었다. 유비는 누구를 조문객으로 보냈으면 좋겠느냐고 제갈량에게 물었고, 제갈량은 자신이 가겠다고 자청하였다. 유비의 만류에도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오나라로 가서 주유의 빈소에 절을 하며 문상을 하였다. 오나라의 장수들은 제갈량을 보자 일제히 칼을 뽑으려 하는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였고, 노숙이 이를 말려 조문이 시작되었다.
제갈량은 주유의 관 앞에서 엎드려 흐느끼며 입을 열었다. “천하의 영웅이신 장군이 어찌 이리도 허망하게 가신단 말입니까? 여기 그대의 벗들이 다 있는데 장군만 없다니요. 제가 장군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달려오지 못하고 지체한 것은 밤을 새워 장군에게 걸맞은 제문을 쓰느라 늦은 것이니 부디 하늘에서 받아주십시오.”
그의 흐느끼며 우는 소리가 어찌도 처량했든지 오나라의 모든 문무 대신들이 감동을 받고 함께 울었다고 한다. 그는 주유의 자리를 물려받은 노숙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일어섰고, 나오면서 오나라의 장수들에게 ‘우리의 공적은 조조’라고 강조하여 유비와 손권의 결속을 다졌다.
제갈량이 장례식장을 나와 배를 타려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루터에 왔을 때 누군가가 등을 치며 귀에 속삭였다. “주유를 화병으로 죽게 만든 장본인이 조문을 오시오? 동오엔 인재가 없는 줄 아시오?” 제갈량이 속마음을 들켰구나 하고 깜짝 놀라 돌아보니 천하의 귀재 방통이었다. 제갈량은 조문을 통해 조조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최고의 책사 방통을 유비에게 선물하는 일거양득의 결과를 창출했다. 이것이 정치이다. 한국에는 정치 고수가 없다. 그것이 슬프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강남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