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우리는 냄새를 묘사할 때, “좋다, 나쁘다, 향기롭다, 역겹다”등의 형용사를 쓴다. 그렇지만 가끔 냄새에도 감정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즉 “기쁜 냄새, 슬픈 냄새, 미운 냄새, 반가운 냄새”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물리적인 사실과는 상관없이 각자의 경험에 의해 그 냄새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投射)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랑하는 연인이 이별을 고하며 준 꽃 냄새는 아무리 아름다운 향기라도 영원히 슬픈 냄새로 기억될 수 있고, 어렸을 때 콩서리하여 구워 먹다 새카맣게 타버린 콩 냄새는 그리운 냄새일 수 있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영시개론』 시간에 “프랜시스 톰슨(Francis Thompson 1859-1907)”의 <하늘의 사냥개(Hound of Heaven)>라는 시를 배운 적이 있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그분에게서 도망쳤습니다, 밤과 낮의 비탈길 아래로; 나는 그분에게서 도망쳤습니다, 세월의 아치 저 아래로; 나는 그분에게서 도망쳤습니다. 내 마음의 미로(迷路)로; 그리고 눈물의 안개 속에 그분을 피해 숨었습니다, 그리고 흐르는 웃음의 시냇물 속에; 조망(眺望)이 활짝 트인 희망의 가로수 길로 달려 올라갔습니다, 그러다가 누가 미는 바람에 거대한 공포의 심연 속으로 쏜살같이 거꾸로 떨어졌습니다, 쫓고, 또 쫓아오는 저 힘찬 발길을 피해. 그러나 서두르지 않은 추적으로, 침착한 보조로, 유유한 속도로, 위엄 있는 긴박성으로, 그분의 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늘 내 곁에 있었습니다.” [하략]
이 시는 “신과 인간 과의 관계”를 재미있는 비유로 묘사한 시 인데 교수님은 강의하시면서 “사람마다 독특한 마음의 냄새를 갖고 있다”고 하셨다. “심통난 사람은 심통의 냄새를 풍기고, 행복한 사람에게서는 기쁜 냄새가 나고, 무관심한 사람이나 이기적인 사람들은 모두다 주위에 그들의 못된 마음의 체취를 풍긴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얼마 전 어떤 TV 프로에서 진행자가 한 청년이 병든 아버지와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피자를 배달하는 모습을 인터뷰했는데 그날 그 청년도 비슷한 말을 했다. 진행자가 청년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자 “좋은 냄새가 나는 가정을 갖고 싶습니다”라고 답하면서 다음과 같이 부연해서 설명을 하였다.
“겨울에 오토바이를 타고 피자 배달을 다니면 정말 지독하게 춥습니다. 그런데 피자를 배달하기위해 현관문을 들어서면 언제나 그 집 특유의 ‘독특한 냄새’가 있습니다. 집이 크든 작든, 비싼 가구가 있든 없든, 아늑하고 따뜻한 ‘사랑의 냄새’가 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어딘지 냉랭하고 ‘서먹하고 썰렁한 냄새’가 나는 집이 있습니다. 아늑한 냄새나는 집에서는 정말이지 추운 집밖으로 나오기가 싫지요. 저도 훗날 그런 가정을 꾸미고 싶습니다.”
지금 나는 LA근교, 산마리노의 ‘헌팅턴도서관’의 오래된 책의 향기 속에 파묻혀, 새삼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집의 냄새는, 아니 나의 체취는, 내 마음의 냄새는 무얼까? 이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내리네.
이 글은 서강대학 영문학과 故장영희(張英姬, 1952~2009) 교수가 미국 유학시절에 쓴 글이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장영희교수는 서울대 사범대학 교수를 역임했던 영문학자 장왕록(張旺祿, 1924~1994)교수의 딸로 생후 1개월에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이 되었으나 불굴의 노력으로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하고 서강대 영문과에 입학, 학-석사를 마치고 미국 뉴욕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모교 서강대 영문과 교수로 강단을 지키다가 나쁜 병으로 아까운 나이 57세에 별세하였다.
장영희 교수가 쓴 글을 읽으면서 제일 인상적인 것은 “마음에 냄새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 마음의 냄새는 어떤 것일까 궁금해진다. 똑같은 ‘포장지’이지만 비누를 쌌던 포장지에는 향내가 배어 잇고 굴비를 쌌던 포장지에는 비린내가 배어 있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모습에서 예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성품에서 풍겨나는 냄새는 맡을 수는 있다는 뜻이다. 내 마음의 냄새가 “그리스도의 냄새”였으면 좋겠다. 성경(고후 2:15)에서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자신을 “그리스도의 향기(냄새)”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냄새》가 풍겨나는 것이 우리 모두의 희망사항일 것이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