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화두는 공정과 평등이다. 공정과 평등이 사회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만큼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얼마 전 필자가 미국 LA에 갔을 때 그곳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이 LA 지역에서 꼭 보아야 할 곳이 있다고 하면서 자동차로 필자를 데려간 곳이 있었다. 그곳은 집이 없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몰려 사는 노숙자들의 거리였다. LA 지역은 1년 내내 춥지가 않아 그곳에는 수많은 노숙자가 모여들어 극빈자들의 거리를 이루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듯한 극빈 노숙자들의 처절한 모습을 보고 필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그곳으로부터 자동차로 30분쯤 북쪽으로 올라가면 미국 최고 부자촌으로 알려진 베벌리힐스가 있다. 우리 돈으로 수백억씩 하는 초호화 저택들이 즐비한 곳이다. 거의 운동장만 한 거실에 셀 수 없이 많은 방들이 있는 대궐 같은 저택이다. 노숙자들의 거리를 보다가 이런 대저택을 보면 인간 사회의 불평등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다. 금수저 집안에 태어나 44세에 대통령이 된 케네디는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라고 말했다지만, 완전히 공평한 세상은 에덴동산이 회복되기까지 기다려야 할는지 모르겠다.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세상에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 있다. 높은 자나 낮은 자나, 권세 있는 자나 힘없는 자나, 억만장자나 노숙자나, 모든 사람에 똑같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시간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똑같이 주어진다. 또한 몇만 원짜리 싸구려 시계나 수백만 원짜리 시계나 똑같은 시간을 알려준다.
누가복음 19장에는 예수님의 ‘므나의 비유’ 말씀이 있다. 주인이 10명의 종들에게 똑같이 한 므나 씩 나누어 주었다. 므나는 예수님 당시 돈 단위이다. 석 달 정도 일해서 버는 돈에 해당한다고 하니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얼마 후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을 불러 계산한다. 첫 번째 종은 받은 한 므나를 불려서 열 므나를 갖고 왔다. 큰 수확을 거둔 것이다. 주인은 기뻐하며 칭찬했다.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두 번째 종은 한 므나를 늘려 다섯 므나를 갖고 왔다. 그도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받은 한 므나를 수건에 싸뒀다가 그대로 가져온 종이 있었다. 주인은 “악한 종아!” 하며 책망했다는 비유의 말씀이다.
이 비유 말씀에서 우리는 ‘므나’를 ‘시간’으로 대치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1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수고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열 므나, 다섯 므나를 남기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열 므나, 다섯 므나를 가져온 종에게 주인이 칭찬한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네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였다”는 것이 칭찬의 이유이다. 세상 사람들은 큰일, 빛나는 일, 이름을 날리는 일,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은 다르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일,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하는 작은 일을 하나님은 소중하게 여기신다. 공평하게 주어진 2022년, 큰일뿐만이 아니라 작은 일에도 충성하며 열심히 살아서 많은 결실을 맺고,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 하였다!”고 우리 모두가 칭찬받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