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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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후 1951년 1월 4일에 우리 군이 후퇴하게 되어 또다시 피난길에 나섰다. 우리 군의 후퇴로 도로가 막혀서 피난민들은 강촌역에서 기찻길로 갈 수밖에 없어 굴을 지나게 되었는데 저녁이 되어 굴속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고 소의 울음소리와 가족들 이름을 불러대는 큰소리에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다. 누구 하나라도 넘어지면 밟혀 죽을 수밖에 없었고 식구와 떨어지면 찾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소리치며 가족들 이름을 불러댔던 것이었다. 

고생하며 굴을 빠져나왔으나 황골로 가서 산을 넘어야 강(여울)을 건널 수 있었기에 어두운 밤인데도 가파른 산을 넘기로 했다. 동생 셋은 짐을 지고, 나는 다섯 살 난 동생 혜숙이를 업었고, 아버지께서는 이불과 옷을 싼 보따리를 지셨고, 어머니는 젖먹이 동생을 업고 머리에 짐을 이고 모두 산을 넘어야 했다. 

나는 산 중턱도 못가서 너무도 힘이 들어 나무를 두 손으로 잡고 못가겠다고 울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나의 곁으로 오시더니 나의 손을 잡으시고 앞으로 끌어당기셨고, 어머니께서는 한 손으로 뒤에서 내가 업은 동생 등을 밀어주었으나 한 발도 옮길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여인의 통곡 소리가 들려 왔다. “우리 아기 살려주세요!” 모두 놀라서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아기를 업었던 포대기를 잡고 소리치며 울고 있었다. 업었던 아이가 흘러내려서 치키다가 아이가 벼랑 밑 강물에 떨어진 것이었다. 누구도 구해줄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피난민들은 구경만 하면서 산을 넘고 있었다. 울어대는 여인의 울음소리를 들으시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내가 업고 있는 동생 혜숙이를 내려놓으라 하시더니 동생을 포대기로 싸서 이불 보따리 위에 올려놓으시고 일어나 산을 타셨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셨는지!

산을 넘은 후! 강(여울)을 건너야 하는데 물살이 세고 물이 좀 깊었다. 나와 바로 아래 동생은 허리까지 물이 차기 때문에 밑에 옷을 벗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건너갔으나 어린 동생들은 아버지께서 한 명씩 등에 업고 건너야 해서 세 번을 왕복하셨다. 

우리는 한번 건너기에도 칼로 몸을 베는 것 같은 아픔이고 건너서도 자갈을 밟기가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엉엉 울었었는데 그 고통을 참으셨던 우리 아버지! 

청평까지 걸어서 갔다. 그곳에서 외갓집 가족들을 모두 만났다. 잠시 쉬다가 다시 서울로 떠나려던 중에 어머님께서 후송대 속에서 낯이 익은 경찰 한 분을 만나셨다. 그분은 예전에 전투 중에 다리에 총을 맞아 춘천 도립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머님께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치료받던 경찰 분들을 우리 집으로 데려다가 돌봐주셨었고 낯익은 경찰은 바로 그들 중 한 분이었다. 정말 기적 같은 만남이 아닐 수가 없었다.(나는 그때 학도병으로 나가 있어서 그 사실을 처음 들었다). 다행히 그분께서 그 일을 기억하시고는 우리 가족을 자기 가족이라고 하고 군경 가족 전용트럭에 탈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분께서 우리를 태워 주고 바로 다른 후송차로 떠났다. 

 하나님께서 어머님의 손길을 기억하시고 베푸신 은혜라 생각을 했다. 트럭으로 떠나는 우리를 향해 손짓하며 “잘 가라! 나중에 만나자” 하시던 외할머님의 모습이 마지막이 되었다. 

함명숙 권사

<남가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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