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외면받는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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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어떤 종교에도 그들 나름대로 경건을 위한 절기와 의식이 있다. 한 종교에 있어서 예식과 절기 문화는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를 통하여 종교는 항상 자기 자리를 확인할 수 있으며 흐트러졌던 자세와 잘못된 모습을 반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가장 확실하게 가진 유대교는 아직도 초막절 등의 절기를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하며 누룩 없는 빵과 천막생활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이슬람교가 시행하는 라마단 절기와 성지순례 등 그들의 종교적 문화의 모습은 너무 엄격하여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불교는 많이 약화하였다고는 하지만 연등 행사를 비롯한 여러 절기는 눈에 띌 만큼 문화적 가시 현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천주교의 사순절 문화도 우리 개신교보다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조직적이다.

기독교의 대표적인 경건 절기는 고난주간을 포함하는 사순절이다. 사순절은 기독교 최대의 명절인 부활절에 앞서 40일 동안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사순절은 역사적으로 금욕과 절제의 기간이었다. 모든 오락이나 육체적 쾌락을 위한 행사가 금지되고 참회와 말씀 묵상과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리는 삶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기독교의 사순절은 ‘경건의 능력’ 뿐만 아니라 ‘경건의 모양’도 없는 퇴색된 절기임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경건의 위선’까지 더해진 한심한 절기로 변질되었다. 교회는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그리고 점점 ‘경건의 모양’도 없어지고 있다. 교회의 언어나 행동에 조금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여러 가지 교회 경축 행사도 사순절에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를 망치는 주범인 각종 회의도 사순절에 제약 없이 행해지고 있다. 각종 회의에서의 싸움과 분쟁이 여전하고, 차기 선거와 한 자리를 위한 물밑 작업과 경쟁이 치열하다. 이는 모두 명예와 감투에 종교적 혼을 다 빼앗겨버린 채 고상한 삶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려는 몸부림도 없는 초라하고 벌거벗은 교회의 모습이다. 

사순절 기간에는 회의만을 위한 모임을 없애야 한다. 굳이 모인다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하는 모임이어야 한다. 40일간 회의가 없다고 교회가 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40일간의 ‘경건의 모양새’도 없는 종교라면 그 장래가 암담할 뿐이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강남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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