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생명나무 신앙” <창세기 2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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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에덴동산 한가운데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를 두셨습니다. 생명나무 열매를 먹게 되면 영생을 하게 되지만 선악과 열매를 먹으면 죽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두셨을까? 하나님의 왕 되심과 인간의 본분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살라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이와 함께 유혹이 있을지라도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유혹을 이기고 살라는 메시지도 들어 있습니다. 더 나가서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인정하고 ‘내가 하나님’되려는 교만한 마음을 갖지 말라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마치 보디발이 자기 집에 있는 요셉에게 모든 것을 맡겼지만 한 가지는 허락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 한 가지가 보디발의 아내인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를 취한다면 요셉이 보디발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상황 속에는 생명나무도 있고 선악과도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도,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만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있지만 요한계시록에는 생명나무만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언제나 생명나무를 선택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명나무 신앙은 어떤 것인가요?

첫째는 아멘의 신앙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 열매를 먹지 말라(창 2:17)고 말씀하십니다. 사탄이 와서 유혹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하지 못하고 사탄의 음성에 아멘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된 말씀, 계시된 말씀, 선포된 말씀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에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서 내게 말씀을 주실 때 아멘 하는 신앙의 모습을 통해서 생명나무 신앙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허물을 덮어주는 신앙입니다.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면서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의 허물을 따뜻한 사랑으로 덮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고 있을 때 세 아들 중에서 함이 이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첫째아들 셈과 셋째아들 야벳이 이 말을 듣고 아버지께 달려갑니다. 아버지의 허물을 보지 않게 위해서 뒷걸음질 쳐서 아버지를 덮어주고 나옵니다. 후에 노아는 함을 저주하고 셈과 야벳을 축복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나무 신앙은 허물을 덮어주는 큰 보자기 같은 것입니다. 

셋째는 긍정의 신앙입니다. 모든 일에 부정적인 말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악과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 14장에서 열두 명의 정탐꾼이 가나안을 정탐한 후에 보고를 합니다. 열 명은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고 하면서 가나안땅을 정복할 수 없고 우리는 광야에서 다 죽게 되었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이렇게 긍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결국 두 사람만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 57장 19절에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바라보고 긍정을 선택하는 것이 생명나무 신앙입니다.   

넷째는 하나님 주권의 신앙입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 중에서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함 받았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그렇게 인정받는 것이 성경에서 정확하게 이것 때문이라고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윗이 그렇게 인정받는 것은 사무엘상 24장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동굴에 숨어있게 됩니다. 사울 왕이 동굴 입구에 들어와 있을 때 다윗의 사람들은 사울 왕을 제거하자고 말합니다. 그때에 다윗의 마음속에 있었던 하나님 주권의 신앙을 사무엘상 24장 6절에서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마치 기드온의 300명 용사가 12만 명 이상의 미디안 군대를 물리칠 때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삿 7:18)”외쳤던 것과 같이 하나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생명나무 신앙입니다. 

다섯째는 평생의 동역자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역자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민수기에 보면 모세를 도우라고 동역자로 세움 받았던 고라의 무리들은 모세를 대적하다가 멸망하게 된 것을 봅니다. 바울이 복음 선교사역을 위해서 평생을 함께 동역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로마서 16장에는 바울을 도와서 함께 동역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35명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바울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 동역했던 인물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3~4절에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브리스가와 아굴라같이 동역자가 되어서 생명나무 신앙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서은성 목사

<상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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