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사색당쟁은 편가르기와 진영논리에 의해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강조하던 성리학의 기본도 상실한 채 당리당략에 몰입하여 민생을 외면하고 정적을 척결하는 데만 목숨을 걸었다. 동인과 서인의 자리다툼으로 시작된 당쟁은 노론과 소론으로, 시파와 벽파로 대립하면서 사색당쟁은 격화되고 붕당정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쟁이 첨예화하면서 수구세력과 진보세력의 갈등은 조선의 4대 사화(士禍)라 불리는 피바람의 비극을 낳았던 것이다.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는 절대가치가 아닌 것들로 당파 간의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왕비가 죽으면 상복을 얼마 동안 입느냐, 어느 왕자가 세자가 되느냐 등을 두고 대립하였다. 결국 당쟁은 성리학의 대가들까지 패거리 정치집단으로 몰아넣게 되었다. 이런 정쟁으로 국민들이 도탄에 빠지고, 국가가 외세에 의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볼세비키혁명 전야에 러시아정교회는 사제들의 예복의 길이가 얼마가 되냐 하느냐, 술(tassel)의 색깔을 어떻게, 몇 개를 달아야 하느냐 따위의 논쟁을 쉬지 않다가 공산혁명을 맞게 되었음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제20대 대통령선거는 당선자를 발표할 때까지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초 접전이었다. 양강 후보자가 접전이었다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자질을 충분히 갖춘 후보가 없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된 이제는 치열했던 과정에서 빚었던 네거티브 공세와 마타도어를 넘어서 하나의 국가, 한 국민으로 성숙된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할 책임이 대통령 당선자를 비롯한 국민 모두에게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유대인은 어느 민족보다 탁월한 개성과 민족성을 동시에 가진 민족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유대인 10명이 모이면 서로의 의견이 팽팽하여 결국 11개의 의견이 제안된다고 한다. 10명이 제안한 10개의 안과 통일된 1개의 의견 때문이라고 한다. 평화시대 유대인은 10개의 의견으로 늘 대치하지만 전쟁시대 유대인은 1개의 의견으로 똘똘 뭉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유대인의 민족성은 자국민에 대한 끔찍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2011년 팔레스타인 하마스에 납치되어 5년간 억류되었던 이스라엘군 길라드 샬리트 병장을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인 재소자 1,027명과 교환하였다. 팔레스타인은 자기네가 1,026명의 덕을 봤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스라엘군 1명의 가치가 팔레스타인인 1,027명과 대등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민족에 대한 사랑과 하나 됨이다. 대통령 후보 모두가 훌륭한 한국인이며, 선거 과정에서 최선을 다 한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남아프리가공화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사랑하고 애도한 고 넬슨 만델라는 인종차별주의(apartheid) 의 희생양으로 27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출옥하였다. 그가 감옥에서 나온 후에 “어떻게 억압한 사람들에게 원한을 갖지 않을 수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원한을 가질 시간이 없습니다.”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대통령 취임식에는 그의 간수를 연단으로 초청함으로 화해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이런 대통령이 국민을 하나로 이끌어갈 수가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흠모할 만한 자질을 가진 지도자가 많이 있었다. 세종은 왕위에 오르자 제일 먼저 한 것은 자기의 정적인 황희를 기용한 것이다. 황희는 1418년 양녕대군의 세자 폐출의 불가함을 극간하다가 태종의 진노로 귀양을 갔던 세종의 입장으로서는 제1의 정적이었다. 그를 과감히 기용하여 세종 18년간 영의정에 임명함으로서 세종의 성세를 이룩하는 데 기여하게 하였다. 로마가 천년 이상 제국을 유지한 비결은 민족, 문화, 종교의 차이를 인정하고 모두를 감싼 포용력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탁월함은 자신의 정적인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임명한 포용성과 자신감에 있다고 평가한다. 미국은 당과 정권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자리인 연방준비제도(FRS) 의장이나 미국연방정보국(CIA) 국장 등은 바뀌지 않는다. 이런 관용과 포용력이 국가의 힘이며 강한 국가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적폐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지난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이 이어져왔다. 정치보복은 조선시대의 사화(士禍)에 비견할 만한 아픔이 있었고 그 대가는 국민의 몫이었다. 이제 이후로는 과거에 집착하는 보복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통합을 지향할 수 있는 정권이 되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국민들은 대통령 당선자가 자신이 선택한 후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기도하는 성숙함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정치보복이 아닌 정치선진화의 희망을 심는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감시단의 역할을 슬기롭게 수행하는 국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성희 목사
<연동교회원로, 증경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