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년째가 된 코로나의 정국 속에 맞게 된 2022년 사순절, 진정 우리는 우리나라의 힘찬 번영과 통일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되게 하여 새 봄의 생동감과 함께 예수님의 부활을 향하여 나아가는 거룩한 성도들의 몸부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사순절을 신앙의 행위를 앞세우는 가톨릭의 옛 유물이라고 치부하면서 이를 지키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여기는 면도 있긴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고 하심과 사도 바울이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간곡하게 당부했던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딤전 3:16)라고 하심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고 하심을 기억하며 자신의 신앙을 살피며 말씀을 묵상한다면 얼마나 귀할까?
특히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한국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의 희망이 되고, 소망을 주는 교회가 되고자 하지만 갈수록, 아니 코로나의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은커녕 비난과 외면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때, 예수님의 수난과 순종으로 이루신 구속의 은총을 깊이 묵상하며 돌아보는 사순절이 된다면 교회와 성도들에게 참으로 소중한 절기가 될 것이다.
사실 우리 교단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세상의 교회를 향한 안타까운 시선에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 속으로”(제102회)라 주제를 정하고 복음의 실천이 부족했음을 회개하고 나름대로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건만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도 교회는 위로와 소망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많은 고통을 주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고 그래서 숱한 질시와 외면을 받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에 지난 106회 총회에서는 “복음으로,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라 목표를 정하고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복음으로 돌아가 먼저 우리를 새롭게 하고 예수님처럼 자신은 철저하게 희생함으로 보여주신 그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성도가 되자고 전국 교회에 천명했으니, 사순절을 기점으로 복음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귀할까?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즉 사순절을 정한 절기로 지키고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실천 목표를 정하고 지키는 것에 만족하고, 정말 복음을 재발견하고 복음의 실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소원이신 온 인류의 구원을 향하여 나아가실 때,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마 4:1)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다. 능히 하실 수 있고 해도 되겠지만 거절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심에 있어 쉽고 특별한 기적의 역사가 아니라 겸손히 고난과 순종으로 복음을 실천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라,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고 내게 절하면 네게 주리라”고 하심에 대해서도, 반드시 하셔야 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사역을 힘들게 하지 말고 권세와 영광 속에 감당하라는 시험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성취는 자신을 희생함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루는 것임을 보여 주심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돌로 떡을 만드는 일이 시험이라 할까 아니면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라 할까? 또한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을 받는 사역자인 것처럼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는 것과 같은 은사를 거절할까 아니면 자랑하며 이용할까? 좀 더 진지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앞으로 5년간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대선이 마무리 되었다. 그런 중에 세상의 권세와 권력에 서로 먼저 편승하려고 앞 다투어 지지한다느니, 혹은 비리를 폭로한다느니 하는 것이 과연 순수한 복음의 실천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권력에 편승하려는 사탄의 전략에 넘어간 것은 아닐까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복음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되어야만 꼭 필요한 교회요 성도가 될 수 있고 세상도 귀하게 여김을 깊이 새기는 2022년 사순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문대식 목사
<열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