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을 때,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를 읽고 한 장만 넘기면 곧 신약성경 마태복음으로 이어진다. 구약과 신약은 종이 한 장으로 구분되어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30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있었다. 이 기간을 ‘구·신약 중간시대(Intertestamental Period)’라고 부른다. 중간시대는 세계사에서는 ‘희랍 시대’였다. 주전 330년대 알렉산더가 역사 무대에 등장하여 페르시아(=바사) 제국을 무너뜨리고 희랍 시대의 문을 연 후, 로마 시대로 전환될 때까지 약 300년간의 기간이었다. 이 희랍 시대가 성경의 역사에서는 구약과 신약의 중간시대였다. 이 중간시대에 성경 역사와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첫째는 당시 이집트의 중심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이 희랍 시대의 국제공용어인 희랍어로 번역되었다. 이를 ‘70인역’이라고 부른다. (이에 관해서는 지난 회에 상세히 설명했다.)
여기서 잠시 유대인들의 언어의 변화에 대해 고찰해 본다. 주전 587/6년 유다 왕국이 멸망하고 바벨론 포로기를 거친 후, 유대인들은 차츰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주전 400년대 들어와서는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히브리어 대신 당시 국제공용어인 아람어(Aramaic=아람 방언)를 사용했다) 느헤미야 8장에는 학사 에스라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구약의 5경의 말씀을 히브리어로 읽어주었을 때,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해서 아람어로 통역할 필요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시간이 흘러 희랍 시대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 땅에 사는 유대인들이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나 모두 히브리어를 잊어버린 지는 오래되었고, 히브리어로 쓰여진 구약성경은 읽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구약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당시 국제공용어인 희랍어로 구약을 번역하는 일이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그러한 요구에 부응해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70인역’ 희랍어 번역이 이루어진 것이다.
둘째, 희랍 시대에 있었던 또 하나의 획기적인 일은 유대인들 사이에 희랍어로 기록된 수많은 종교 문헌들이 양산되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80권 이상의 종교 서적들이 이 시대에 저술되었고 유대인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구약성경이 모두 39권의 책으로 되어 있는데, 희랍 시대에 저술된 새로운 종교 서적이 80권 이상이라는 것은 상당히 많은 분량이 아닐 수 없다. 이들 종교 문헌의 공통점은 모두가 희랍어로 쓰여졌다는 것과, 그 저자가 유대인들이라는 것 외에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 종교 문헌들은 ‘70인역’ 번역과 함께 유대인 사이에 널리 읽혀지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즉, 범람하는 많은 종교 서적들 중에서 특히 15권의 책들은 ‘70인역’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책으로 점차 인정받게 된 것이다. 따라서 ‘희랍어 구약성경’은 원래 히브리어로 쓰여진 39권과 희랍 시대 쓰여진 종교 서적 15권이 합해져 모두 54권의 책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히브리어 구약성경은 39권인데 비해 ‘희랍어 구약성경’은 15권이 더 많게 된 것이다. 모두 54권으로 된 희랍어 구약성경을 ‘알렉산드리아 정경(Alexandrian Canon)’이라고 부른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