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기독교적 사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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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마스 홉스에 의해 유명해진 이 라틴어 구절은 인간의 본능적인 야만성을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그 자체 자연스러운 것으로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제한된 자원을 두고 벌이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심지어는 타인의 생명까지도 빼앗아야만 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사회는 끊임없는 죽음의 공포와 위험에 처하게 되고,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며 비참하고 야만적이며 단명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무정부적인 자연상태는 절대권력을 갖는 국가가 성립함으로써 비로소 종식된다고 홉스는 주장한다. 사람들은 이성의 판단에 의해 자신의 권리를 자발적으로 국가에 양도하는 사회계약을 맺고 국가의 통치를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문명사회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홉스의 사회계약론에 입각한 국가이론은 최초의 근대적 정치사상이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관에 익숙해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무한경쟁과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고,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국가가 개입하여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와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사회관이 존재하는데, 이 새로운 사회관은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영국의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가 그의 유명한 저서 『국부론』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 1750년대 산업혁명 이후 시작된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경제체제에서는 사람들은 제한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분업과 교환을 통해서 서로 협력하면서 새로운 부를 창출하고 공동으로 번영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아니라, 자유시장경제라는 상호이익을 위한 분업체계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실제로 신석기시대 농업혁명 이후부터 산업혁명이 시작되기까지 약 일만 년의 긴 세월 동안에 인류의 일인당 소득은 겨우 세 배 정도 증가했을 뿐으로 경제성장은 사실상 제로였다. 그러나 산업혁명이후 겨우 200여 년 동안 인류의 소득수준이 30여 배로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등, 놀라운 번영과 경제성장이 일어났다. 인류는 시장경제의 이 놀라운 성과를 통해 비로소 절대적 빈곤과 질병의 질곡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열게 되었다.

제한된 자원을 놓고 생존경쟁을 벌이던 전통사회에서는 홉스의 사회관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었다. 전통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이익은 다른 사람의 손해를 의미한다. 상인의 이익은 소비자의 희생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개인의 창의성이 발휘되는 시장경제는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 시장경제에서는 한 사람의 이익은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이 된다. 예를 들어 아이폰은 스티브 잡스에게 큰 돈을 벌게 했지만 아이폰을 사용하는 수많은 소비자에게 훨씬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홉스의 국가이론은 그 이후 루소를 통해 프랑스혁명의 사상적인 기초가 되고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에 영향을 미쳐서 오늘날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전체주의적 사회관의 출발점이 되었다. 반면에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자유주의 사상은 개신교의 칼빈주의로부터 시작되어 미국의 건국이념이 되고 현재의 자유민주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결국 현대 유물론과 무신론적인 철학이 전체주의적 사회관으로 귀결되었다면, 자유민주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기독교 정신에서 비롯된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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