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의 종소리] 자유를 위해 싸우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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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를 향한 러시아의 무력 침공이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2014년에 우크라이나의 영토인 크림반도 및 돈바스 지역을 유린당했고 이제는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고자 불가피하게 나토 동맹 가입을 추진하는 것을 구실삼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유린하고 국토를 피로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합당한 이유를 말하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그 이유에 공감하는 나라는 소수의 공산주의 국가외에는 없는 듯하다. 우크라이나는 복음 및 개신교에 대해  가장 열려 있는 민족이었고, 복음의 제사장 나라를 꿈꾸며 수많은 사역자가 일어나고,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나라로 힘차게 전진하는 중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러시아의 침공이 이루어진  것은 엄청난 영적전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등에서 추방당한 선교사들에게 따뜻한 피난처를 제공해 주었고 많은 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던 나라이다. 

현지 선교사들에 의하면 우크라이나인들은 한국을 신앙적, 경제적으로 본받아야 할 모델 국가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고통이 가득한 이때에 한국교회 성도들이 고난 받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함께 한다면, 그들은 평생 우리 한국의 교회들을 좋은 친구로 기억하며 기도할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더 나아가 유럽과 구공산권 복음화, 그리고 중동권 복음화에 귀하게 쓰임받는 나라가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엄청난 희생을 치를 것을 알고도 강대국 러시아에 대항해 온 국민이 힘을 합해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 한가지 이유이다. 자유를 위해서이다.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길래 이처럼 엄청난 대가를 치루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일까? 대한민국이 자유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을 때 전세계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파병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오늘 대한민국의 자유가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자유를 위해 싸우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 강대국 러시아의 압력과 향후 맞이할 수 있는 경제적 손실을 따지며 돕는 일에 주저한다면 대한민국이 진 빚을 잊어버린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처절한 싸움을 보면서 문득 대한민국을 위해 생명을 다해 싸운 윌리암 해밀턴 쇼가 생각났다. 그를 기억함으로 우크라이나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자 한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미국인 선교사 서위렴1세(William E. Shaw)의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났다. 당시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부모님 덕분에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낸 그는 한국을 조국으로 여길 정도로 한국을 사랑했다. 미 해군에 입대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던 쇼 대위는 1947년 전역 후, 그리워하던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미 군정청 소속으로 ‘조선 해양경비대사관학교(현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며 생도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교관으로 근무하던 중 학업에 뜻을 품은 쇼 대위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 과정을 밟게 된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2의 조국’인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겠다며 미 해군에 재입대한다. 그는 당시 한국에 있던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금 한국인들은 전쟁 속에서 자유를 지키려고 피 흘리고 있는데, 제가 흔쾌히 도우러 가지 않고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린 후 선교사로 가려 한다면, 그것은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라며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해 맥아더 장군의 중요한 참모 역할을 하여 기여하였다. 1950년 9월 22일 아침 쇼 대위는 적 후방 정찰을 위해 녹번리(현 은평구 녹번동)에 접근할 때 적의 공격을 받아 28세의 나이에 전사한다. 그는 평생 한국을 위해 봉사한 부모님과 함께 합정동의 외국인 묘역에 안장됐다. 

이재훈 목사

<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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