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삼국지를 다시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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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리는 아침 책상에 앉아 새로 나온 삼국지를 펴 든다. 도원결의편 시작부터 재미있다. 건국대에서 정년 퇴임한 신복룡 교수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번역출판하고 나서 다시 여러 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저술한 우리말 삼국지의 ‘결정판’이라는 후배의 소개가 있었기에 전5권 중 제1권을 샀다. 역사학자의 글이라 서술이 투박한 반면에 괜한 기교가 들어있지 않아 오히려 제 맛이 난다. 

신교수는 학계에서 다소간 좌파적 시각을 지닌다는 평가를 받는 분인데 그의 『한국분단사 연구』를 일독하면서 해방전후에 등장한 남과 북의 여러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매우 균형 잡힌 그의 탐구에서 많은 배움을 얻은 바 있다. 아무튼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학문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기에 ‘학자가 연구나 하지 무슨 삼국지 번역인가’ 하는 힐문 대신에 그가 어떤 결과물을 내놓았나 하는 데 기대가 앞섰다. 우선 나관중의 원전에 최대한 충실하려고 여러 판본을 참고했고 엄청난 양의 각주를 달아 서기 2세기쯤에 해당하는 그 시대 중국 역사문화를 이해시키려 애를 쓴 흔적이 뚜렷하다. 

삼국지가 우리 세대 사람들에게는 성장기 인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방대한 스케일의 스토리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 호걸들이 만들어 내는 힘과 지혜의 상승작용, 의리와 맹약, 충성과 배반, 총기와 우매함, 보은과 보복이 인간의 의지에서 출발했다가 결국  ‘하늘’의 뜻을 벗어나지 못하는 결말을 보며 삼국지의 독자들은 나름대로 인생의 철리를 깨닫는다. 유비, 관우, 장비는 각자의 인간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3인의 결합체로서는 높은 윤리성을 보여주고 그 대척점에서 조조는 출중한 감각과 지략을 자신의 최대 이익을 위해 사용하면서 어떠한 도덕 규범의 제약도 거부한다.

쫓기는 몸을 거두어 준 부친의 친구 여백사가 좋은 술을 구하러 나간 사이 그를 위해 돼지를 잡으려 준비하는 하인들이 자기를 잡으려는 줄로 착각해 죽이고서 술을 받아오는 여씨마저 참살한 조조의 행위는 악의 표본이 되지만 그에 대한 하늘의 직접적인 응징은 내려오지 않는다. 지혜와 충성심의 화신인 제갈량은 여섯 차례의 중원 토벌마다 불의의 장애를 만나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수명을 늘이려는 기도마저 촛불이 꺼져 중단하고 말았다. 삼국지를 청소년기에 처음 읽었을 때 우리는 인생의 현장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오직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상호관계에서 의리의 소중함을 배웠다.

살만큼 살고나서 다시 삼국지를 읽으며 때가 마침 정치대사인 대통령선거를 막 치른 뒤라 흥미가 더욱 각별했다. 부지불식 중에 우리나라 2022년 대선의 후보군과 그들 주변의 인물들을 삼국지에 등장하는 주역들과 대조해 보며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성을 관통하는 인자를 발견한다. 어느 정치인에게서는 난세의 간웅 조조의 일면이 드러나고 또 다른 사람에게서는 후덕해 보이나 답답한 유비의 캐릭터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이 땅의 좌우 정파들에 관해 삼국지에서와 같은 정통성의 추구, 그리고 그에 대항해 역사의 반전을 노리는 의지를 본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호흡하며 사는 사람에게 삼국지는 세상과 인간을 관조하고 이해하는데 아직도 가치 있는 교범이 된다. 물론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성경이라는 진리의 샘이 따로 있지만.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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