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목사의 목회 일기 #3
새벽입니다. ‘다코야키 청년’을 생각합니다. 다코야키(takoyaki). 둥근 모양의 틀에 묽은 밀가루 반죽과 잘게 썬 문어를 넣어 만든 일본식 풀빵. 저도 한번 먹어 본 적이 있습니다. 맛나기도 하지요. 왜 다코야키냐고요? 저를 찾아온 예비부부인 새 가족 한 쌍 때문입니다. 남편 될 청년이 바로 용인에서 유명한 다코야키 노점을 하고 있더군요. 그것을 먹으려면 예약하고 4~5시간 후에 찾으러 갈 정도라고 해요. 참 대견하고 귀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회사의 어려움으로 그만두고 장사할 생각을 했고, 유명한 다코야키 기술자에게 가서 배우려고 용인에서 충북 괴산까지 가는 열정이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쉴 시간도 없이 그렇게 장사를 준비하고 노점을 하면서도 힘이 나는 것은 그것 자체에 보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돈 버는 재미? 함께 나누면서 그 다코야키를 임신 때부터 먹던 어떤 아주머니는 아이가 7살이 되어서 그것을 사 먹으러 온답니다. 벌써 용인에서 7년째 그 일을 하고 있는데, 일에 대한 사명도 뚜렷하고 열심히도 있습니다. 도리어 그 청년과 이야기하면서 제가 배웁니다. 다시 다코야키의 장인(匠人)이 되기 위해 지방행도 마다치 않고, 그런 열정에 감동한 다코야키 기술자는 자기 아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다코야키 레시피의 비결을 이 청년에게 알려줬다고 합니다. 그 열정이, 그 사명이 그를 만들었습니다. 저도 노점 심방을 가서 한 번 사 먹어야겠습니다. 그 맛난 다코야키는 열정과 사명이 들어 있는 맛이겠지요.
다코야키 예비부부가 주일에 교회에 왔습니다. 올 줄 알았지만, 또 이렇게 와주니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제가 주례하기로 약속하는 조건은 ‘결혼을 위한 말씀 양육’을 네 번 정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용인에 사니, 교회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기에 우리 교회에 등록하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가정입니다.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예배 후 함께 식사와 차를 나누는 시간에도 지난 시간을 회상하면서 은혜의 교제가 되었습니다. 신부는 인천 계양, 신랑은 용인, 신랑될 청년이 신부를 모시러 인천 갔다가 다시 양평으로 오니 참 먼 길인데 마다치 않고 와주어 감사했습니다. 신랑될 청년이 너무 바쁘고 분주한 모습에 안타까웠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를 푹 쉬라고, 그렇게 쉬지 않으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가정을 책임지지 못한다고, 제 나름대로 엄한 충고를 하게 되었지요. 주일에 도심에서 벗어나 양평, 아니 여기 양동에 와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라고.
제가 먼저 알았던 신부는 아는 사모님의 조카입니다. 가끔 을지로 교회에 나왔지만, 사모님 부부가 캐나다에 이민가고 나서는 뜸했는데, 제 나름대로 신앙이 외롭지 않도록 직장으로 심방도 가고 함께 결혼을 위해 기도도 했었습니다. 이제야 결혼하지만 둘이 교제할 때 많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집안의 반대로. 저도 그런 경험이 있는지라 응원하고 함께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기억이 나고 고마워서인지 부족한 저에게 주례를 부탁했습니다. 이모 되시는 사모님이 캐나다에서 전화가 왔고, 신부될 자매도 같은 마음으로. 목양하는 것, 양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항상 감사와 은혜로 열매 맺게 되어 그저 감격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정확하신 분입니다. 저 자신도 을지로교회에서 부목사로 있는데, 분주하고 바쁘다고 자매가 정식 성도도 아니고 다니러 온 사람인데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열매가 있었을까요? ‘작은 일’에 충성하고 순종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해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누가복음 16장 10절)” 그런데 목회에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작은 일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다 큰 일이고 우주적인 일이고 원대한 하나님의 꿈입니다. 충성된 일꾼으로 다시 한 번 다짐하고 기도하는 새벽이 되었습니다.
김동기 목사
<단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