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2022년 노동주일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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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러저러한 고난과 만나게 된다. 어떤 고난은 우리를 절망의 나락에 떨어뜨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운명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또 어떤 고난은 배움과 연단의 계기가 되어 고난을 겪어낸 사람을 더 강한 사람, 더 깊은 인격의 소유자로 고양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고난이 절망으로 비화하고 어떤 고난이 인격의 성숙으로 인도하게 될까? 

요한복음 9장의 이야기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만난 이야기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물었다. 이 사람에게 닥친 이 참혹한 운명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의 죄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입니까? 

제자들의 질문은 고난을 죄의 결과로 보는 고대 유대인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고난의 원인을 고난의 당사자에게 돌리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다. 타인의 고난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느끼지 않고 홀로 편안해지려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 

이러한 생각은 고난에 처한 사람을 더욱 비참한 운명으로 빠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생각은 고난 자체도 괴로운데, 그 고난이 자기가 지은 죄의 결과라는 죄책감마저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비난받게 될 때, 그리고 아무도 그의 고난에 주목해 주지 않을 때, 고난은 헤어나올 수 없는 운명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고난이 절망이 되지 않고 개인과 사회의 인격적, 윤리적 고양의 길로 나아가는 경우는 언제일까? 독일의 신학자 도로테 죌레(Dorothee Selle)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나와 다른 이들을 구별하면서 고통을 겪지 않기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고통이 나의 영성과 삶에 흘러들어 올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완전히 열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고통이 ‘우리’를 집어삼키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함께 고통의 구조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 어떤 사람에게 고난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그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누군가 그의 고난에 주목하고 공감하며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고난은 그의 삶을 파괴하는 절망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한 고난은 오히려 고난 겪는 사람을 더 강하고 성숙한 인격으로 고양시킨다. 그리고 타인의 고난에 주목하고 연대하는 사회는 윤리적인 성숙으로 나아가게 된다.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고난이 누구의 죄 때문인지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요 9:3)” 

예수님은 타인의 고난을 대할 때, 마치 하나님의 계시를 대하듯 그의 고난에 주목한다면, 그러한 주목과 관심만으로도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고난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와 연대하는 이들과 그들이 소속된 사회까지도 구원의 계기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에 깊은 관심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의 현장을 찾는 일을 열심히 한다. 자연재해의 현장, 가난과 기아의 현장, 전쟁과 폭력의 현장을 찾아가 돕는 일을 언제나 열심히 해왔다.

필자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히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에서 지정한 ‘노동주일’을 맞이하여 조금은 생소한 현장에 연대해 주실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그것은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이 장기간 길거리에 천막을 꾸려놓고 농성하는 현장이다. 특별히 아시아나케이오 해고 노동자들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벌써 700일을 넘기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이미 3번의 재판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 법적인 정당성을 넘치도록 증명하였지만, 아직도 복직되지 못하고 있다. 농성이 길어지며 불과 세 명의 노동자만 남았는데, 그중 두 명은 안타깝게도 이미 길거리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말았다. 지금 필자가 사역하는 성문밖교회와 7~8개의 기독교 선교단체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5시, 농성장에 모여 기도회를 진행하며 미약하나마 연대의 마음을 나누고 있다.

2022년 노동주일을 맞이하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께서 이처럼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한 노동자들에게 관심과 연대를 보내 주신다면 노동자들의 고난은 결코 절망이 되지 않고 오히려 구원의 계기가 될 줄로 믿는다. 

김희룡 목사

<성문밖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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