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으로 익숙해진 단어는 ‘비대면Untact’이다. 이러한 ‘비대면’ 사회로의 흐름은 코로나 재난이 가져온 것은 아니다. 이미 시대의 중심적인 흐름으로 변화되고 있었는데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급속도로 가속화된 것이다.
비대면 사회가 빠질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은 인격적 교제가 단절되면서 영혼을 더럽히는 수많은 미디어들에 사람들이 더욱 빠져드는 것이다. 이미 끔찍한 포르노나 폭력적인 영상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더러운 삶으로 이끌고 가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육체와 영혼을 분리시키고 상상과 몸 사이에 단절이 일어났기에 일어나는 것이다.
세상이 거짓과 음란의 문화로 육체와 영혼을 분리시키고 있는 사이에, 교회 안에서는 교회와 세상의 분리로 나타나서 신앙과 삶은 서로 다른 것으로 여겨진다. ‘머리’로는 너무 잘 아는 진리가 ‘몸’으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예수님 시대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 자들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받기를 원했다.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제도화하여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였다. 그런데 금식을 계속 행함으로 그들의 마음은 더 교만하게 되어 하나님과 더 멀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영혼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시간이 흘러갈수록 육체를 위해 지켜지고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교회 공동체에 가져온 유익은 ‘본질’을 향해 변화되도록 도전하였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일정한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것을 신앙이라고 여기고 있다면 다 벗어버리도록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을 위해 만들어진 교회의 제도들이 도리어 육체를 위해 지켜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벗어버릴 것을 도전한다. 이번 재난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배우고 있다. “교회에 다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죤 하브릭의 다음의 문구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명언이다.
“교회는 결코 장소가 아니라 항상 사람이며, 결코 양의 우리가 아니라 양 자체이고 또 결코 거룩한 건물이 아니라 언제나 믿음의 모임인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 바로 당신이 교회이지 당신이 기도하는 그 장소가 교회는 아니다. 이 세상에 거룩한 곳이란 인간을 제외하고는 없으며, 영혼을 제외하고는 인간 내부에 지성소란 없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예배당 건물 안의 어느 장소에 자신의 몸이 있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교회인 사람들은 내면에 그리스도의 임재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교회의 생명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다.
비대면 사회가 되든 예전대로 회복되든지 교회의 본질이자 능력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대면하여 그분의 임재하심을 경험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만들어 놓은 종교적 전통은 세상과 분리된 옷을 입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를 세상과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소금과 빛으로 침투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이재훈 목사
<온누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