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직장 따라 대전으로 이사하여 출석해온『대전성지장로교회』에서 시행하는 ‘성경통독 500독 대행진’ 행사에 동참, 여러 해에 걸쳐 13독을 끝내고 나서, 성경을 필사하기로 마음먹고 하루 평균 4~5시간가량 작업을 하여 1년 6개월 만에 국한문성경 66권 전권(全卷)의 필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글씨가 비교적 속필(速筆)이어서 처음에 예정했던 것 보다는 시간이 많이 단축이 된 셈입니다.『대한성서공회』가 2009년 1월에 간행한《국한문 관주성경》개역개정판(改譯改訂版)을 교재로 하여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어려서 외조부님께 천자문의 상당부분을 공부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학생시절 한자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학창시절 내내 한자를 열심히 익힌 덕분에 2006년 4월『한국어문회』가 주관하는 32회 한자능력급수 자격시험에서 3,500자의 학습을 요구하는 ‘한자 1급 자격시험’에 통과하는 행운이 있었습니다.
성경필사를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주안점(主眼點)에 맞춰 작업을 하였습니다. 첫째, 시중에는 성경필사를 위해 다양한 ‘성경필사노트’가 준비되어 있으나 필사자 나름의 구상으로 A4용지에 조금 넓은 간격으로 가로 줄을 쳐서 독자적인 원고지를 만들었습니다. 국한문을 필사하자면 대체적으로 한자는 크고 국문은 작게 마련인데 그 서체의 크고 작은 글씨를 조화롭고 유연(柔軟)하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둘째, 한자 용어는 정자(正字)를 원칙으로 하되 일상생활에서 획수가 많아 관행적으로 약자(略字)를 사용하는 몇 글자는 더러 약자로도 표기하였습니다. 특히 같은 페이지에 같은 한자어가 반복되어 나오는 경우에는 정자와 약자를 번갈아 표기하였습니다. 이는 한자서예의 경우, 같은 글귀에 같은 글자가 반복되는 경우, 한 글자는 변형하여 쓰는 불문율(不文律)을 모방해본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각 권의 장(章)은 표기하되 절(節)의 표기는 생략하였습니다. 일일이 절을 표기하다보면 불필요한 여백(餘白)이 생기고 또 문장의 흐름이 끊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서예학원에서 한자서예의 기초를 익힌 덕분에 한자의 획의 균형을 비슷하게나마 그릴 수 있게 되어 국한문 혼용성경을 필사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자는 흘림체가 섞인 행서체(行書體)의 흉내를 내어보았으며 전체적인 서체의 조화를 위해 한글도 흘림체로 써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신구약성경 1,752면, 약 140만자를 모두 필사하는 데 A4원고지 3,206면이 소요되었습니다. 이 전체 원고를 3등분하여 제본을 하니 한 권의 분량이 1,068면이 되고 상권, 중권, 하권으로 분철, 제본하여 쌓아놓으니 3권 전체의 두께가 약 20cm에 달했습니다.
필사하는 과정에서 오탈자(誤脫字)가 생길 경우, 수정액(修正液)을 사용하지 않고 같은 재질(材質)의 원고지를 오려 붙이고 정서(淨書)하여 정정(訂正)이나 오류(誤謬)의 흔적이 표면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여 미흡하나마 시각적인 작품성과 예술성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세필(細筆)로 필사하기 위해 모나미 플러스 수성펜을 사용하였는데 전체를 완성하는데 12개짜리 9세트, 즉 전체 108자루 중에서 3자루가 남았으니 모두 105자루가 소모된 셈입니다.
공교육(公敎育)에서 한자가 사라진 이후, 한글세대 중에서 국한문성경 전권(全卷)을 필사하신 분을 만나고 싶어 전국에서 ‘성경필사전시회’가 열렸던 서울CBS, 전주CBS, 광주CBS 등 몇 곳을 직접 방문하거나 유선으로 확인해보았습니다. 국한문성경의 일부 또는 병풍이나 족자에는 국한문혼용 작품이 있었으나 국한문성경 전체를 필사하여 완성한 분으로는 경남 창원시 동읍장로교회 박병문(朴炳文, 1952~ ) 장로님 한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완성된 필사 원본은 모교회인『대전성지장로교회』에 기증하고 복사본 몇 질(帙)을 제작하여『한국장로신문사』와 고향 경기광주의『분원감리교회』와『삼산학원(三山學園)』및 우리 집안 자녀들, 그리고 친지 몇 분에게 선물하였습니다. 대전 소재『임마누엘인쇄출판사』사장 오인탁(吳寅鐸) 장로님의 배려와 정성으로 필사본의 원본과 사본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태어나게 된 것을 깊이 감사드리며 아울러 성경필사를 위해 기도로 후원해 주신 친지들과 우리 가족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하는 바입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