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유형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면 권위있는 지도자와 권력을 의지하는 지도자로 나눌 수 있다. 하나님께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에 질서를 부여하시고 그 질서를 다스릴 수 있는 권위도 함께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권위를 주셨다. 이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할 때에만 사용될 수 있는 권위이다. 인간이 하나님이 위임하신 권위에 복종할 수 있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권위부터 만나야 한다.
하나님께서 권위를 제정하신 것은 얼마나 큰 모험인가! 하나님이 제정하고 위임하신 권위가 하나님을 잘못 대변한다면 하나님께는 얼마나 큰 손해인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그런 권위를 정하셨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는 권위에 대한 갈망이 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할 때 인간에게는 권위가 회복되지만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때 그 권위에 대한 갈망은 권력욕으로 변질된다. 인간이 타락하고 반역했을 때 인간들은 하나님을 배역하는 영적 권위 가운데 속하게 되었다. 18세기에 일어난 계몽주의 운동은 서구 문화에 자율과 자의식을 심어주는 운동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배척한 운동이다. 모든 것을 이성과 양심에 비춰 시험해보라고 요청했고 가장 성스럽게 여겨졌던 전통과 그 전통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권위까지도 의문을 제기해보고 도전하는 운동이었다. 계몽주의 이래로 과학은 여전히 권위로 군림하고 있다. 과학계에도 권위가 존재한다. 이미 과학적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코 과학자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엄청난 권위와 그에 대한 순종과 믿음이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 사실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있다. 동일한 원리가 신앙의 영역에서는 부정되고 있다. 오늘날 성경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권위있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부정으로 인해 하나님의 권위가 부정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을 때 사람들의 질문속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권위라는 단어이다. “저가 누구이기에 이런 권위를 행하는가?” 예수님은 랍비 타이틀은 없었지만 권위있는 가르침을 주셨다. 예수님은 세상의 권력은 거부하셨지만 하나님의 권위로 활동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 행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권위를 사용하심에 있어서 자기 자신에게 영광이 돌아오지 않도록 주의하셨다. 세상의 타락한 권위는 사람으로 하여금 높아지는 것을 목적으로 삼게 만든다. 그래서 권력이 된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그것은 하나님처럼 높아지라는 권력으로의 유혹이었다. 그러나 참된 권위는 다른 삶들의 필요를 채워주는데 사용된다. 참된 권위는 다른 사람을 권위있게 하기 위해 사용된다. 세상에는 권력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권위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자신을 위한 권력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권위는 영향력을 통해 나타난다. 권력을 통해 유지되는 권세는 오래가지 못한다. 권위 있는 지도자는 군림하지 않고 아래로부터 섬긴다. 예수님의 섬김은 십자가에서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로 인정되셨다. 교회가 영적 권위를 회복하려면 먼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권위와 성경의 권위가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세상을 섬기는 종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교회가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권위가 교회를 통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재훈 목사
<온누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