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하에 자녀 두 명을 두고 사랑스런 부인과 함께 살면서 조금은 고달프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이가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우연히 친구 따라 나갔던 교회생활에서 보람과 재미를 느껴 대학교를 다니면서는 꽤나 열심히 교회에 출석했다. 그러다가 군대생활을 하면서 조금은 멀어진 교회가 제대 후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점점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자녀들도 생긴 후로는 더 많은 수입을 위해 규모가 꽤 큰 마켓을 경영하게 되었다. 사업은 잘 되었지만 쉬는 날 없이 계속되는 업무로 부인과 아들들은 교회에 열심히 나가지만, 쉬어야한다는 핑계로 교회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다시 교회에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 때였다. 한바탕 바쁜 시간이 지나고 조금 한가한 때에 걸려온 전화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사랑하는 큰 아들이 자동차에 치어 병원에 입원했다’는 뜻밖의 소식이었다. 허겁지겁 달려간 병원응급실 밖에는 정신을 잃은 부인과 이미 소식을 듣고 달려온 목사님과 몇몇의 교인이 앉아 있었다. 다행히 머리는 다치지 않았기에 큰 걱정은 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은 있었지만, 의식을 잃고 붕대를 감고, 주사바늘을 꽂고 누워있는 아들을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평소에 가깝게 지냈던 교회식구들이 앉아서 위로를 해주는 사이 부인은 어찌할지 모르면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역시 교회는 이렇게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정말 커다란 도움을 주는 공동체구나’라고 생각하며, 근래에 교회출석을 등한시 했던 일을 반성하면서 ‘이제부터는 열심히 교회출석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마침 울고 있던 부인에게 교회의 권사께서 하는 ‘소위 충고의 말’을 듣고는 소름이 일면서 분노의 마음이 일어났다. 맥이 빠져 정신이 하나도 없는 부인에게 그가 한 말은 “이는 당신 남편이 교회에 나오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노하심으로 일어난 사고이니, 남편이 속히 회개하고 교회에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병원이 아픈 사람이 찾아가서 병 고침을 받는 곳이라면, 교회는 죄를 짓기도 하면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찾아 죄를 회개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장소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교회에는 자신은 예수를 잘 믿는 참된 크리스천이라고 자만하면서 신앙생활을 게을리하는 이웃들을 폄훼하는 신도들도 꽤나 있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자신만이 정말 예수를 잘 믿고 있다’고 자만하기에, 다른 한편으로는 슬그머니 다른 사람을 비평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는 교회의 직분을 무슨 계급인양 여겨 다른 교인에게 심적인 고통을 주는 경우도 왕왕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직분은 군대에서의 계급장 같은 것이 아님은 자명한 일이다. 신앙은 함께 예수를 믿는 신도들 사이에 ‘누가 예수를 더 잘 믿는가’를 따져보는 경기가 아니기에 내가 보기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그런 신앙태도를 본받으면 되지, 결코 이를 나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신앙태도이다. 그것은 예수를 잘 믿는 법은 시험문제처럼 어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에 대한 평가는 오로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만을 돌아보며 겸손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족한 것이다. 행여나 잘못된 판단으로 어설프게 남의 신앙생활을 평가하고 섣불리 그에게 돌을 던지는 잘못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