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더웠던 여름, 8월의 어느 날! 육군사관학교 교장님의 이·취임식이 있어서 훈련을 받고 있던 생도들이 학교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서둘러 교회로 갔다. 마침 교회에서 만난 어느 생도가 말하기를 영주가 무릎이 아파 훈련을 받을 때 다리를 끌고 뒤따라 쫓아오는 모습이 아주 힘들어 보인다고 전해주었다.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걱정으로 가득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가서, 수박을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하고, 옥수수를 쪄서 짐을 꾸려 들고 부지런히 교회로 다시 돌아가 목사님 사무실에 일단 음식을 놔두고 주위 생도에게 영주를 교회에서 면회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교회마당을 서성이며 아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오는 아들을 만나자 고여 오는 눈물을 얼른 훔치고는 먼저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회마당에 있는 벤치에 앉게 하고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기도를 시작했다. 정성을 다해 정말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떠보니 주변은 벌써 아둠이 깔려있었고, 아들의 바지 위에는 나의 눈물과 아들의 눈물로 범벅이 되어 젖어 있었다.
그제서야 가져온 음식을 빨리 먹이려고 교회당 안으로 뛰어들어가 음식 보따리를 찾아보니 의자 위에 빈 보자기만 놓여 있었다. 교회에 왔던 다른 생도들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고 가버린 것이었다. 눈물이 나도록 속상하고 원망스러웠다. ‘수박 한 쪽이라도 남기지….’ 음식을 먼저 먹이고 기도를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먼저 시원한 수박을 먹일 걸!….
왜 그리 생각이 모자랐을까… 주말이 되면 늘 음식을 넉넉히 싸서 들고 면회를 가서 주변의 생도들까지 아들처럼 생각되어 나누어 먹었고 그 기쁨이 너무 커서 행복하기 그지없었는데… 오늘은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엄마를 만나러 온 내 아들에게 시원한 수박 한 쪽도 못 먹인 이 상황이 너무나 속상하고 화가 났다.
아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불만이 있어도 몸이 아파도 내색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아이의 모습이 더 마음 아팠다. 괜찮다며 내무반으로 절뚝거리며 돌아가는 아들의 뒷모습에 가슴이 미어지도록 측은했다. 힘없는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몸을 씻기 위해 옷을 벗고 보니 등이 전부 모기 물린 자국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건 그리 대수롭게 생각되지 않았다.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하나님께 무릎으로 간구하는 일이었다. 매일 피아노 레슨으로 시간이 충분치 못했던 나는 아이들을 가르친 후에는 곧바로 삼각산으로 향했다. 교통편이 좋지 못하고 산에 올라 흙바닥에 앉아 기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바위 위에 서서 오로지 자식의 고통을 대신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렇게 하나님을 찾았다. 그때의 기도는 간절한 간구의 기도였다.
함명숙 권사
<남가좌교회>